김영민 교수는 연말연시에 여러 매체에서 원고 청탁을 받는다. “독자에게 위로와 희망을 줄 수 있는 글”을 써달라는 요구에 “절망을 밀어낼 희망과 위로를 말할 자신이 없어 사양합니다. 너른 양해 바랍니다”라고 답장을 쓴다고 했다. 유머러스하고 순발력이 뛰어난 인문학적 글쓰기로 이름난 저자의 사양 메시지는 ‘희망이 없어도, 누구나 자기 삶의 제약과 한계를 안고 또 한 해를 살아가야 한다’는 뜻으로 읽혔다. 절망을 쉽게 밀어낼 글은 쓸 수 없지만 허무한 인생을 살아가야 할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글이 모여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되었다.
송나라 문장가 소식의 <적벽부>를 모티프로, 인간 보편의 문제인 ‘허무’를 다루는 책은 그 독특함과 방대한 미학적 전거로 한 권의 책을 읽는 기쁨과 보람을 배가시켰다. 많은 그림과 책들, 시와 영화들의 출처를 밝히며 인용하고 새롭게 구축한 글들은 다양한 텍스트를 교차로 들춰보는 듯한 효과를 준다.
<적벽부>는 소식이 유배 시절 양쯔강을 유람하면서 지은 글이다. 유구한 자연과 대비되는 짧고 덧없는 인생을 깨닫고 시름을 달래는 내용이다.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적벽부>의 흐름에 따라 8개의 장 구성에 맞추어 글을 배치했다. 부록으로 실린 <적벽부>를 연결해 읽는다면 더욱 흥미로운 독서가 될 것이다.
슬픔에 지쳐 힘을 낼 수 없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죽음의 기억이 자신을 압도할 때, 무의미에 휩싸일 때 어떻게 해야 하나. 김영민 저자가 인용한 안희연 시인의 말은 연말에 읽은 어떤 문장보다 절실한 힘을 주었다.
“슬픔이 파도처럼 들이닥칠 때, 절벽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언덕을 오르는 중이라고 상상하라. 이렇게 시인 안희연은 권유했다. 슬픔은 마음뿐 아니라 몸을 침범하는 것이어서, 슬픈 사람은 절벽이나 수렁을 상상할 뿐, 언덕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절벽과 달리 언덕은 그 위에 시원한 바람을 이고 있다. 그리하여 언덕에 힘들여 오른다는 것은 그 바람을 맞을 수 있다는 것, 그리하여 절망하지 않고 다시 언덕을 내려올 것임을 약속하는 것이다.”
언덕을 상상하라는 말, 희망이 답이 되지 않고 희망 없이도 살아갈 상태가 답이라는 메시지는 책 전반에 걸쳐 나타나며, 저자는 인간이 지닌 복잡한 심사를 포착하여 ‘허무와 더불어 사는 법’에 대해 고민을 나눈다.
지상에서 천국은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저자는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법으로 예술 작품의 향유, 그리고 반복된 일상을 단단히 지켜내는 습관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내년에도 일상은 변함없이 지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