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정의한 E. H. 카의 말이 새삼스러워지는 시간이다. 한 해가 저물고 또 새해가 온다는 건 불연속적인 시간을 관념적으로 구분하기 시작한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시작도 끝도 없는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을 분절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은 우리에게 ‘현재’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과거를 돌아보고 이미 벌어진 일을 정리하는 일은 개인의 삶에서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다가올 미래를 위한 준비는 과거와 현재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도 다르지 않다. 역사는 지난 시간의 정확한 사실에 대한 해석이고 이를 토대로 현재와 미래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를 질문하는 역사 2
최광영 지음 | 곰곰(휴머니스트) | 2022
역사는 암기 과목일까. 그렇지 않다, 그것은 일명 ‘꼰대’들의 학습법이다. 기성세대의 교육은 철저하게 강의 위주의 암기가 기본이었다. 왕조사 중심의 역사적 사실과 연대기를 암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객관식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얻는 방법은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가 해석이 아닌 사실의 영역이라는 착각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논쟁은 과연 역사가만의 몫일까?
모든 지식은 일시적이고 유동적이다. 과학 분야의 지식과 이론조차 시대를 반영하고 변화 가능성을 내포한다. 하물며 인문학적 지식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사실’이 아닌 ‘해석’의 영역일 뿐이다. 객관적 사실조차 모호할 때는 논쟁의 여지도 없다. 그래서 역사는 수동적 학습이 아니라 능동적 활동의 영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를 돌아보면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옳고 그름의 문제도, 선악의 가치 판단도 잠시 미뤄두고 끊임없는 대화와 토론을 시작해보자.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최광영은 역사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의 연속이라고 정의하는 듯하다. 제국주의는 과연 지나간 시대의 유물인지, 근대식 학교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었는지, 1945년 8월 15일에 한반도 사람들은 해방되었는지, 신속과 효율의 나라가 희생시킨 건 무엇인지 쉬지 않고 묻는다. 정답은 없고 해석과 고민이 이어진다. 질문과 호기심으로 시작된 역사 공부는 능동적인 해석과 현실 적용 문제를 남긴다. 정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위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모든 역사는 ‘나’를 중심으로 현재와 미래를 연결한다. 그것이 살아있는 역사 공부의 시작이다. 토론과 논쟁이 계속되어 비판적 사고력을 기를 수 있다면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삶의 태도를 가질 수 있다. 이 책은 지식과 정보 습득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근현대 한국사를 통해 현재의 나와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을 마련해 준다.
미래를 여는 역사
한중일3국공동역사편찬위원회 지음| 한겨레출판| 2022
역사를 ‘공간’의 영역으로 확장할 수는 없을까. 지나간 시간은 언제나 공간 속에서 존재한다. 사람과 사건은 3차원의 공간으로 읽어내면 또 다른 역사가 보인다. 대한민국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다. 북한과 중국으로 가로막혀 대륙적 상상력이 가로막혔으니 바다를 건너 다른 세상으로 나아갈 수 없다면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야 한다. 특히 멀고도 가까운 나라 중국과 일본은 우리와 애증의 역사를 함께했다.
3국의 근현대사는 서로 얽히고설킨 관계다. 인접 국가와의 전쟁과 평화는 한 나라의 역사에서 가장 기본적인 사료다. 현재 벌어지는 동아시아의 국제 관계, 즉 힘의 역학과 경제 전쟁은 한중일 삼국을 떼놓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각국의 청소년은 서로 다른 역사를 배운다. 객관적 사실조차 부정하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 왜곡된 역사를 가르치기도 한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한중일 3국 공동역사편찬위원회가 ‘미래를 여는 역사’를 함께 만들었다. 적어도 3국이 동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동 역사를 가르치자는 취지다. 그것이 거시적인 안목으로 아시아의 평화와 미래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개항과 근대화, 일본 제국주의, 침략 전쟁과 민중의 피해, 제2차 세계 대전 후의 동아시아에 관한 객관적 사실을 ‘한중일’ 청소년들이 함께 배운다면 동아시아의 미래가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그리 거창한 꿈도 불가능한 현실도 아닌 일을 실천에 옮긴 각국의 학자, 시민 단체, 교사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 책은 일반인들에게도 왜곡된 3국의 근현대사를 바로잡는 데 도움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