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플 때는 슬픈 노래를 들으라는 말이 있다. 어린이는 밝고 건강하게 자라야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감정을 억누르라는 말은 아니다. 이태원 참사 앞에서 놀랄 때, 가까운 가족이 세상을 떠났을 때 혹은 자신과 이웃에게 슬프고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어린이라서 몰라도 되는 건 아니다. 외면보다 슬픔을 정직하게 마주할 줄 알아야 한다. 슬픔을 가장 정직하게 직시하는 작가로 유은실과 케이트 디카밀로 그리고 김중미를 들 수 있다. 이들의 동화를 읽으면 슬픔을 마주할 수 있다. 작품 속 주인공이 겪고 있는 상실과 슬픔을 맑은 물을 들여다보듯 만나다보면 내가 가진 슬픔 또한 투영할 수 있다.
비어트리스의 예언
케이트 디카밀로 지음 | 비룡소 | 2022
뉴베리상 수상 작가인 케이트의 디카밀로의 신간. 독자를 중세의 수도원으로 데리고 간다. 슬픔의 연대기 수도원에서 수사 에딕은 염소의 귀를 잡고 잠이 든 소녀 비어트리스를 발견한다. 비어트리스는 자기 이름과 글을 읽고 쓸 줄 안다는 것 외에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당시 글을 읽고 쓰는 건 왕이나 귀족 혹은 수사 몫이었다. 여자에게는 금지된 일이었다.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 비어트리스는 머리를 자르고 수사로 변장해 수도원 밖으로 나간다. 길에서 부모를 잃은 고아 잭 도리를 만나고 비어트리스를 찾는다는 왕에게로 향하는 여정이 그려진다.
동화의 주인공인 비어트리스, 고아 잭 도리 그리고 한쪽 눈이 사시인 수사 에딕은 험한 일을 당했거나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상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깊은 슬픔을 간직한 이들은 여정을 통해 사람과 세상에 대한 사랑을 확인한다. 더없이 슬픈 이들을 단단하게 만든 건 서로의 존재다. 서로에게 친구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사랑 그리고 이야기가 세상을 바꿀 수 있어.”라고 말한다. 슬픔을 이겨내는 힘도 여기에 있다. 사랑 그리고 이야기.
곁에 있다는 것
김중미 지음 | 창비 | 2021
김중미 작가는 독자들이 “왜 슬픈 이야기를 써요?” 하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 적이 있다. “사는 건 슬픈 거예요. 슬프지 않은 삶은 없어요. 그런데 슬픔 속에 아주 잠깐잠깐 찾아오는 기쁨이 사람을 살게 해요. 그리고 슬프고 어려운 일들을 겪으면서 함께 하는 사람들의 존재를 인식”해요.
《곁에 있다는 것》은 20년 만에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잇는 작품이다. ‘괭이부리말 아이들’이 살던 그곳에 지금은 누가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 주인공은 지우, 강이, 여울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은강이라는 동네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무대이기도 하다. 1970년대와 달리 은강에도 아파트가 들어섰지만 그 시절보다 더 은강은 중심으로부터 밀려나 있다. 조금이라도 돈을 벌면 사람들은 은강을 떠나고 더 가난한 사람들이 은강으로 모여든다. 가난은 아래로 흐른다.
동화는 지우, 강이 그리고 여울이의 이야기지만 동시에 은강방직 노동자였던 엄마들의 이야기이고 다시 할머니들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지우, 강이, 여울이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은 서로 다르다. 지우가 중심을 잡고 은강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면, 여울이는 필사적으로 공부해서 은강을 떠나려 한다. 서로 다른 주인공을 통해 과연 나는 삶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비추어봐도 좋겠다.
김중미 작가는 귀하다. 가난이 무엇인지, 왜 가난할 수밖에 없는지를 작품을 통해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삼대의 이야기를 통해 가난은 게을러서가 아니라 대물림된다는 사실 또한 보여준다. 그럼에도 슬픔 속에서 희망을 찾는 이들을 끈질기게 지켜본다. 김중미 작가의 말처럼 “슬프지 않은 삶 속에서는 기쁨도 찾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