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인디언의 속담이 자주 인용된다. 한 인간의 성장과 사회화 과정에 공동체 전체의 노력과 애정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처음부터 나쁜 사람으로 태어나는 인간이 있을까. 사람들은 때때로 성선설과 성악설을 주장하며 대립하지만 자신의 말과 행동에 대해서는 한없이 너그럽고 타인의 그것에 대해서는 엄격하다. 더구나 부모와 가정환경 등 선택할 수 없이 주어진 조건에 따라 삶의 태도와 방향이 결정되는 청소년은 어떤가. 모두 세상 탓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적어도 그들의 잘못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함께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내가 만난 소년에 대하여
천종호 지음
우리학교 2021
“보호해 줄 어른이 없고, 좋은 동행이 되어 줄 친구들도 적은 상태에서 아이가 올곧게 성장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판타지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라는 천종호 판사의 말이 인상적이다. 누군가의 보호와 관심이 없으면 인간은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성장하기 힘들다는 의미일 것이다. 주변 환경에 따라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 청소년기에 가난과 불우한 환경이 소년 범죄의 원인이라는 데는 대체로 이견이 없다. 그러나, 사회적인 이슈가 되는 사건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선은 냉혹하다. 소년법 처벌 규정 강화에 대한 논란은 감정적 태도에서 벗어나 근본적인 원인과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
드라마 「소년 심판」 1화, 김혜수가 열연한 심은석 판사가 “나는 소년범을 혐오합니다.”라고 내뱉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냉정한 표정과 차가운 말투로 소년범을 다루는 심은석 판사의 태도는 따뜻하게 아이들을 감싸는 판사 차태주와 대조를 이뤘다. 이 책의 저자인 천종호 판사는 차태주의 마음으로 심은석을 대변하는 듯하다. 판사라는 직업이 가진 특수성으로 인해 죄를 지은 소년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양하게 교차한다. 생계형 절도범부터 성인보다 잔인한 범죄를 저지른 소년범까지 범죄의 경중과 종류도 다양하다. 그렇게 8년 동안 12,000명의 소년범을 만나고 나면 심은석 판사처럼 소년범을 혐오한다는 말이 저절로 나올법하다. 그러나 천종호 판사는 ‘관점’이 다르다. 그들에게서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를 읽어내고 어른들의 실수와 태도를 살핀다. 과연 대한민국이라는 마을은 아이들을 제대로 키우고 있는 걸까.
모든 소년범을 형량을 높이고 사회로부터 격리할 수는 없다. 그들은 설령 최고형을 받더라도 30대 청년이 되어 사회로 복귀할 이웃이다. 소년범에 대한 진단과 처방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근본적인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일이 중요하다. 범죄 자체보다 처벌 이후에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삶의 부조리와 폭력 앞에 아무런 보호막 없이 내던져진 아이들이니 면죄부를 주자는 말이 아니라, 부모의 가난과 열악한 교육환경이 대물림되지 않도록 사회적 제도 보완에도 힘써야 한다는 의미다. 성인보다 교정 기능을 강화하지 않으면 범죄의 순환고리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판사, 경찰, 교사 등 헌신적인 노력과 영웅적인 직업 정신이 상찬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건 이들의 이야기가 널리 공론화되고 좀 더 큰 목소리로 세상에 울려 퍼질 수 있도록 제도 개선과 정책 전환이 뒤따라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소년범의 범죄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소년을 읽다
서현숙 지음
사계절 2021
“고정관념의 뿌리는 깊고 집요하다.”는 서현숙의 고백이 저릿하다. 소년범들이 시를 잘 외울 때, 책을 잘 읽을 때, 정성 들인 편지를 건넬 때 마음이 흔들린 건 감동이 아니라 고정관념과 충돌하는 데서 생긴 충격이라는 자각이 감동적이다. 천종호 판사의 결정으로 소년원에 간 아이들을 누군가는 돌본다. 평범한 국어 교사 서현숙은 1년 동안 이 아이들을 찾았다. 함께 시를 나누고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을 담은 이 책은 무겁다. 단순한 현장 르포가 아니라 아이들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가족 이기주의에 매몰된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모습은 교육과 입시부터 취업과 상속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회적 문제로 나타난다. 오로지 내 자식만 생각하는 태도는 심각한 경쟁 사회가 빚어내는 부작용이 아니라 우리 안고 있는 수많은 사회문제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
소년원에서 갇힌 아이들에게 책은 타인과 세상을 다시 들여다보는 창이다. 자기 삶을 돌아보고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아주 짧은 생이지만 소년범들에게 세상은 결코 따뜻한 곳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이 차가운 건 아니다. 환대를 느끼고 생각을 바꾸는 문장을 만나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또 다른 세상과 만난다. 자신이 저지른 일을 반성하고 후회하는 일도 중요하겠으나 이들에게 필요한 건 자신을 돌아보고 더 넓은 세상에 눈을 뜨는 일이다. 이 책을 통해 서현숙은 동정과 배려가 아니라 변신과 욕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밑바닥을 힘차게 차고 오르듯 아이들의 내면 깊은 곳에 숨은 또 다른 욕망을 꿈틀거리게 하는 일, 지금까지와는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고 싶은 꿈을 꾸게 하는 일이 가능해지는 건 순전히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통해서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과 다르다는 색안경만 끼지 않는다면 소년원에도 사람이 산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생각의 한계, 앎의 범위는 한 인간의 크기를 결정한다. 보통 사람들은 직업과 재산 혹은 사회적 지위, 학력 등으로 타인을 평가하면서 내면의 깊이, 생각의 크기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소년원에서 보낸 일 년의 기록이 서현숙이 아니라 소년범1, 소년범2의 관점으로, 그들의 기록으로도 읽힐 날도 오지 않을까. 우리가 경험한 수많은 사람과 다양한 세상은 단 한 번도 그 자리에 머문 적이 없다. 유동하는 세계의 한복판에서 책은 늘 우리를 전혀 다른 존재로 빛나게 한다.
글 류대성(칼럼니스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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