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단순한 열정》이 출간되었을 당시, 독자와 평단은 열광과 악평으로 들끓었다. 유부남인 연하의 외국인 남자와 연애하는 날들의 기록이 가져온 여파는 아니 에르노라는 이름을 더 널리 알렸다.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라는 소설 속 여성 화자의 목소리는 작가 육성으로 들린다.
유명 작가이자 대학교수인 여성 주인공이 짧은 연애 기간 동안 겪은 내밀한 심리적 변화와 두 사람의 성적인 모험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다. 자전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쓰인 소설이기에, 실제 상대 남성도 짐작할 수 있다.
작가는 왜 사생활을 노출하는가. “자기가 겪은 일을 글로 쓰는 사람을 노출증 환자쯤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노출증이란 같은 시간대에 남들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고 싶어하는 병적인 욕망이니까.” 작가는 자신을 노출증 환자라고 비판하는 이들을 의식해 소설 속 화자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아니 에르노가 사생활을 소설화하는 동력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가. 그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들이 정상이라고 확인받으려고 글을 쓰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보았다’고 했다. 자기 글을 통해 누군가 잊고 있었던 것들을 다시 경험하길 바란다고. 글을 쓸 때부터 한동안 묵혀 다시 읽어볼 때, 그리고 출판하여 독자들에게 작품이 도착할 때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지난다. ‘같은 시간대에 자신을 드러내 보이고 싶어하는’ 노출증과 소설 작품이 다른 이유는, 사적인 기록을 소설화하는 동안 시간이 개입하고 객관화되기 때문이다.
두껍지 않은 분량의 《단순한 열정》은 남녀가 만나 보낸 시간이 인생에서 무엇을 남겼는지 보여준다. 마지막 단락은 매우 인상 깊다.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같은 것을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사치가 아닐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사치스러운 삶이라면, 사람은 거의 모두 삶의 어떤 기간을 사치스럽게 사는 셈이다. 소설은 그 사치를 낱낱이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