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메신저가 불과 하루 동안 먹통이 되었을 뿐인데도 많은 이들이 불편함을 호소했다. 나 역시 영국에 장기 체류하는 가족과 주로 메신저를 통해 안부를 주고받는데 당장 소통이 단절되었다. 답답한 마음이 들고서야 그동안 스마트폰 메신저로 안부를 묻고, 일도 하고, 쇼핑도 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이제 없으면 불편한 정도로 의존도가 높아진 것이다. 더 놀라운 건 우리가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시작한 지 불과 10여 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2009년 11월 아이폰이 국내에 정식 발매되었다. 그러나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 디지털 세계로의 이행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가파르다. 어린이 역시 예외가 아니다. 요즘 부모의 가장 큰 고민은 게임과 스마트폰 사용 그리고 만화책으로 압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성세대와 달리 어린이들은 미래를 살아갈 존재다. 무조건 금지가 답은 아니다. 어린이가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이끌 만한 동화책을 소개한다.
도깨비폰을 개통하시겠습니까?
박하익 글 | 손지희 그림 | 창비 | 2018
지우는 학교 도서관에서 새것처럼 깨끗한 스마트폰을 줍는다. 호기심을 누를 수 없어 화면을 터치하니 ‘평생 구매 및 이용에 동의하십니까?’라는 화면이 뜬다. 엉겁결에 ‘예’라는 버튼을 누른다. 한번 스마트폰을 열자 지우는 멈출 수가 없다. 집에 돌아와 공부하는 척하며 게임 앱을 내려받고, 동영상을 보며 신나게 논다. 그런데 전화가 왔다. 주인이구나 싶어 돌려주겠다고 하자 ‘우리 굴 오는 길’이라는 문자를 보내온다. 이렇게 지우는 도깨비 굴에 도착하게 된다!
도깨비 이야기인가 싶지만 읽다 보면 알게 된다. 동화에서 지우가 주운 스마트폰 때문에 만난 도깨비 세상은 결국 스마트폰이 만들어내는 디지털 세상에 대한 은유다. 스마트폰은 장점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남용하면 폐해도 크다. 지우의 모습을 통해 어린이 독자가 이 사실을 깨닫도록 이야기가 전개된다. 옛이야기를 빌어 만든 도깨비 판타지 세상은 놀라울 만큼 디지털 세상과 닮아있다. 지우가 “무슨 도깨비가 방망이도 없냐”고 하자 도깨비들이 말한다. “누가 촌스럽게 방망이를 들고 다녀, 스마트폰이면 다 되는데!” 맞는 말이다. 스마트폰이면 모든 게 되는 세상이다.
그리고 펌킨맨이 나타났다
유소정 글 | 김상욱 그림 | 비룡소 | 2022
또 한 권의 가상 현실을 다룬 동화다. 《마지막 레벨 업》이나 《게이머 걸》처럼 가상 현실을 배경으로 한 다른 작품과 함께 읽어 보면 좋겠다. 특히 《그리고 펌킨맨이 나타났다》는 가상 현실에 빠져 거기에 탐닉하는 어린이의 마음을 세심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예지의 부모는 이혼했다. 게다 칭찬받으려고 그림을 표절한 게 들통나 따돌림을 당하다 전학까지 한 상태다. 친구가 없는 예지는 집에 오면 언제나 VR 헬멧을 쓰고 가상 현실 플랫폼 파이키키에 들어간다. 그 안에서 예지는 멋진 아바타와 자신이 그린 흑표범을 불러낸다. 엄마나 아빠에게는 진심을 보여줄 수 없지만 파이키키는 다르다. 자유롭다. 그러나 파이키키에서 만난 헬멧 보이와 시티델을 함께 만들며 상황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든다. 재미있어 시작한 일인데 가상 현실에서 예지는 더는 놀 수 없게 된다.
만약 어린이가 가상 현실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면 그 원인은 현실 세계에 있을지 모른다. 결국 가상도 현실이라는 뿌리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고통스럽게 깨달아가는 예지처럼 어린이 역시 디지털 세상을 현명하게 활용할 만한 힘이 있다. 무조건 금지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겪어내고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편이 낫다. 어린이가 ‘과연 나는 디지털 세상에서 어떤 선택을 할까’를 스스로 질문하고 답하도록 이끄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