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시인이며 입양인인 마야는 모국인 한국을 찾았다. 친부모를 찾기 위해서 왔다가, 국가가 어떻게 입양을 독려하고 장사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찾은 친부모와 관계를 맺으며, 뿌리 없이 흔들렸던 인생을 만든 사람과 기관, 국가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다른 입양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그 화는 분노를 넘어 삶 자체가 되었다.
나는 입양인의 삶을 특수한 운명이라고도 생각했다. 이런 나를 《그 여자는 화가 난다》가 뒤흔든다. 미디어에서 보여준 입양인의 성공담, 친부모를 만나 서툰 한국말로 그리움을 고백하는 장면을 인간적으로 보았던 나는 화가 난 마야의 글에 데인 듯하다.
《그 여자는 화가 난다》의 첫 문장은 “여자는 자신이 수입품이었기에 화가 난다.”로 시작한다. “여자는 <화: 불꽃을 잠재우는 지혜>라는 책을 읽으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던 앤드류에게 화가 난다.”가 끝 문장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서술어미가 ‘화가 난다’다. 입양 문제를 안일하게 바라보는 독자에게 지르는 절박한 비명이다.
1980년 한국에서 태어나 덴마크에 입양된 마야는 이방인의 삶을 살았다. 인종 차별의 대상이 된 것은 물론이다. 한국에서 사는 동안에도 언어 소통이 되지 않는 이방인이다. 왜 한국 정부와 덴마크 정부는 아이를 낳아 기르기 어려운 산모를 도울 정책 대신에 그 아이를 빼앗아갈 정책을 우선했는가.
“‘아이들을 위해 부모를 찾아주는 일’보다 ‘부모를 위해 아이를 찾아주는 일’이 더 우선된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바로 그 때문에 소위 ‘어린이 수집가’라는 말도 생겨나지 않았던가. 입양을 원하는 부모들이 입양을 보내려는 부모들보다 훨씬 많지 않았더라면, 입양기관이 어려운 환경에 있는 부모들에게 아이를 달라고 설득하기 위해 큰돈을 쓸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입양되었기에 더 나은 교육 환경에서 자랄 수 있었다고 쉽게 말해서는 곤란하다. 출생국과 입양국의 비밀스러운 약정과 거기에 휩쓸린 인생을 생각한다. 마야의 책은 인간 존엄에 대한 진실을 고백한 책이다.
‘화가 난다’는 반복된 서술어, 힙합의 비트처럼 들리는 목소리에 몸을 맡기면 편견과 허상이 벗겨지는 통렬한 순간이 찾아온다.
“여자는 입양인들의 삶이 성공적이라 간주하는 일반적 사고에 화가 난다. 여자는 입양인들을 동정 어린 눈으로 보는 일반적 시각에 화가 난다.”
한 명의 인간이 온 우주다. 그 우주를 망가뜨린 거대한 힘이 ‘일반적 사고’라는 생각을 한다면, 소름끼치지 않은가. “울고 싶은데 울어지지 않아서 화가 나.”라는 김혜순 시인의 시구가 연결되어 떠오르는 《그 여자는 화가 난다》를 읽은 마음이 먹먹하다.
글 정은숙(마음산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