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와 규율을 중요한 가치로 삼는 공군에서 성추행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일이 생겼다. 공군 여중사의 영혼은 우리에게 묻는다. 희망이 있냐고. 분노가 희망으로 바뀔 수 있을까. 피해자의 신고 이후에도 회유와 은폐 시도가 있었던 군대 조직은 한 여성 군인의 삶을 광활한 우주 속으로 사라지게 했다.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야 우리 사회 여성들이 자신의 인생과 직업을 당당하게 가꿀 수 있을까, 한숨 지으며 두 권의 책을 읽었다. 전에 없던 방식으로 자기 길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여성 9인의 이야기 「멋있으면 다 언니」와 100년 전 각각의 자리에서 여성의 권리를 위해 힘차게 싸웠던 3인의 이야기 「여자들의 테러」가 그것이다.
멋있으면 다 언니
황선우 지음
이봄 2021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며 고유한 성취를 이루어낸’ 언니들을 만났다. 황선우 인터뷰어는 나이와 상관없이 존경하고 싶은 여성들의 경험과 생각을 세상에 전해주고 싶었다고 한다. 질문과 답에는 성의와 존중이 실렸고 각각의 태도에서 삶의 보편적인 통찰을 발견할 수 있다. PD, 영화감독, 작가, 국회의원, 피아니스트, 바리스타, 범죄심리학자 등 직업은 달라도 전문성에 대한 고민과 앞으로 나아가려는 열망은 읽는 사람에게 영감을 준다. 일의 영역 안팎에서 여성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보이지 않는 듯 돕고 있다는 사실도 분명히 보인다.
모든 인터뷰이의 이야기가 흥미롭지만 특히나 지극히 개인적이고 예술적인 세계에 살고 있으리라고 짐작한 피아니스트 손열음 씨의 답을 듣고 화들짝 놀랐다.
“한국에서는 음악 할 때 여자가 압도적으로 많았거든요. 단적으로 말해서 우리가 약자라는 인식을 갖기가 어려웠어요. 그런데 직업 연주자 세계에 들어와서 활동하다 보니까 점차 생각이 바뀌더라고요. 본토의 주류는 너무 서양 백인 남자들인 거예요. 그래서 발끈하게 됐어요. 더 잘해보자라고 다짐하기도 하고요.”
이런 발끈함이 예술가를 사회적으로 공헌하게 하고 음악의 아름다움을 공유하게 만들었다. 예술가로서 정체성를 잃지 않으면서도 음악감독이라는 사회적인 역할에 충실한 그 균형 감각에 경의를 표한다.
책의 부제가 ‘좋아하는 마음의 힘을 믿는 9명의 이야기’다. 개척자 정신으로 어려운 길을 걸어온 여성들은 좋아하는 사람, 좋아하는 일에 대한 긍정적인 마음을 놓아버린 적이 없다. 우리가 부당한 세상에 발끈하며 공론화하고 고쳐가며 사는 것은 삶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여자들의 테러
브래디 미카코 지음
사계절 2021
세상에 태어났으나 무호적자로 학교도 못 가고 사회의 ‘허가를 받지 못한 신분’으로 자라나 아나키스트 운동으로 일본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 가네코 후미코, 여성 참정권을 반대하는 한 각료의 차에 벽돌을 던졌던 영국의 에밀리 데이비슨, 아일랜드 부활절 봉기의 주역이 되어 독립 운동에 앞장섰던 저격수 마거릿 스키니더, 100년 전 바다와 대륙을 뛰어넘어 각각 분투했던 세 여성의 삶이 역동적으로 엮였다.
작가이자 칼럼니스트인 저자 브래디 미카코는 세 여성의 이야기를 섞어 분노와 희망의 목소리를 키웠다. 영국에서 살고 있는 일본인 저자는 자신이 살았던 사회 속 여성의 권리를 역사 속에서 끄집어내 조망한다. 일본과 영국, 아일랜드의 이야기를 섞었고 필연적으로 세 여성은 책 속에서 함께 움직이며 호흡을 나눴다. 작가의 글솜씨가 역사적인 사건과 여성의 삶에 역동성을 부여했고 소설처럼 잘 읽힌다.
영국에서 여성 참정권이 인정된 지 이제 100년이 되었다. 100년 전 이야기가 진짜 지금의 현실 같았다고 저자는 토로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 여성이든 남성이든 그 누구의 가슴에도 이 이야기는 살아남아야 한다고 믿고 있는 저자의 진심이 느껴진다.
세 여성을 선택한 것은 그들이 자신을 불렀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세 여성을 알게 된 우연한 계기를 책 후기에 기록했다.
분명히 역사에 공헌했는데, 공헌한 사람 목록에서 빠진 사람에게는 멋대로 공감한다고. 이런 삐딱한 시선이, 세 여성의 업적을 기록하게 만들었다. 이 여성들이 만든 길 위에 우리들은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