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올해로 41돌을 맞았다. 한국의 현대사는 민주주의를 위해, 인간답게 살기 위해 투쟁하고 산화한 이들의 이름으로 채워져 있다. 그 희생과 진실을 어린이들에게 어떻게 전달해야 좋을지는 부모나 교사에게 어려운 숙제다. 어린이들이 겪어보지 않은 시간을 이해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 가장 권할 만한 방법이 육이오전쟁, 제주 4‧3, 5‧18 광주 등을 배경으로 한 역사 동화를 만나도록 이끄는 일이다. 교과서처럼 역사적 사건을 강조하지 않아도 동화나 그림책 속의 주인공을 만나 자연스럽게 그 시절로 돌아가 함께 분노하고 아파하며 그날을 만날 수 있다.
오월 광주를 어린이의 시각에서 그린 두 권의 책을 소개한다. 시간이 흐르면 기억은 흐려지고 사건은 잊히기 마련이지만 그때 광주가 흘린 눈물이 민주주의의 씨앗이 되었다는 사실은 잊지 말았으면 한다.
오월의 달리기
김해원 지음, 홍정선 그림
푸른숲주니어 2013
오월 광주를 이야기할 때 늘 제일 먼저 떠올리는 어린이문학이다. 1980년 전국소년체전에 전남 대표 달리기 선수로 뽑힌 명수를 주인공으로 광주의 진실을 들려준다.
나주에 살던 명수는 합숙 훈련을 위해 광주에 머물게 된다. 동화의 전반부는 합숙을 하던 아이들의 떠들썩함으로 채워져 있다. 아이들의 꿈과 장난으로 가득 찬 앞부분은 차마 감당할 수 없는 슬픔과 맞닥뜨려야 하는 뒷부분과 극명하게 대조된다. 명수를 포함해 6호실을 함께 쓰던 진규, 성일이는 5월 18일에 꾀를 내어 합숙소에서 빠져나온다. 광주공원에 놀러갔던 아이들은 군인들이 데모하는 학생한테 달려가 곤봉으로 머리를 내리치는 장면을 목격한다. 심지어 “군인들이 그러코롬 사람을 때리믄 워쪄!”라고 말했다는 이유로 곤봉으로 맞고 군홧발로 발길질을 당하는 아저씨를 본다. 그날 합숙소로 돌아오며 아이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마도 우리 군인이 아니라 인민군인가 보다고, 우리 군인이면 한나라 사람을 저렇게 두들겨 팰 수가 있냐고 몸서리를 친다.
오월 광주를 겪으며 나주의 ‘다크호스’라고 불렸던 명수, 전남 대표가 아니라 어쩌면 국가대표가 되었을 수도 있었을 명수의 인생이 바뀐다. 명수에게 꼭 줄 것이 있다며 광주에 오던 아빠가 군인들이 쏜 총에 맞아 죽는다. 하지만 광주로 오가는 교통과 통신을 끊어버린 탓에 아빠의 죽음을 엄마에게 알릴 수도 없다. 광주에서 일어난 일은 당시 신군부가 신문과 방송을 차단하는 바람에 외부로 알려지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해 6월 10일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춘천에서 ‘전국소년체육대회’가 개최되었다.
국가대표를 꿈꾸었던 명수의 달리기가 멈추고, 아들이 잘되기를 바란 명수의 아버지가 죽고, 미스터 박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총을 들고 도청을 지킬 수밖에 없었던 그때의 이야기가 아프게 담겨있다.
오늘은 5월 18일
서진선 지음
보림 2013
처음으로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그림책이다.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의 일기를 빌어 1980년 5월 18일부터 5월 28일까지 당시 광주의 상황을 들려준다.
친구가 가진 장난감 총이 부러운 아이는 자기도 총을 갖고 싶다. 고등학생 누나는 동생을 위해 나무젓가락으로 총이며 종이비행기를 만들어준다. 한데 5월 19일, 진짜 총을 든 군인 아저씨들이 동네에 나타났다. 5월 20일 누나는 할 일이 있다며 집을 나가 들어오지 않고, 엄마는 울고, 아빠는 누나를 찾으러 다닌다. 아이는 태극기를 흔들며 민주주의를 지키자고 외치던 형들, 도청광장에 모여든 사람들, 트럭을 탄 사람들에게 주먹밥과 음료수를 전하는 아줌마들을 본다. 무엇보다 진짜 총에 맞아 죽은 수많은 사람들을 보게 된다. 5월 27일 아이는 장난감 총을 모두 쓰레기통에 버린다. 5월 28일 누나는 여전히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알려진 것처럼 80년 5월 27일 새벽, 2만여 명의 공수 부대가 탱크를 앞세우고 광주 시내로 들어왔다. 도청을 지키던 시민군 대부분이 공수 부대가 쏜 총에 맞아 숨을 거두었다. 아이처럼 많은 이들이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누나를 가족을 지금도 기다릴 테다. 서진선 작가는 광주 출신으로 광주민주화항쟁을 겪었다. 누군가 잊지 않고 그때의 아픔을 기억한다는 사실만으로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그림책을 세상에 내놓았다고 한다.
역사는 그저 지나간 이야기만은 아니다. 과거를 통해 오늘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역사를 소재로 한 동화와 그림책을 만나는 일은 ‘과거와 끊임없이 대화’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