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대체로 선량하지만 또 선량하지 않다. 남의 물건을 빼앗고 친구를 해치지 않는 것이 다는 아니다. 선량한 사람이라도 나와 다른 이들에게 혐오 발언과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이는 누군가에게는 비수와 다를 게 없다. 이런 인식은 대체로 성장과정과 문화 속에서 반복적으로 학습되고 일반화된다. 혹은 위기상황을 약자의 탓으로 떠넘기려는 마녀사냥의 전형이기도 하다.
인류의 역사는 이 차별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과정이었고 더디지만 천천히 전진해왔다. 그러나 요즘의 상황을 보면 너와 나의 차이를 존중하는 일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싶다. 미국에서는 아시아계를 향한 극렬한 혐오가 기승을 부린다. 어린이, 장애인, 사회적 약자를 조롱하고 해코지 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소개할 두 편의 동화는 우리 안의 편견과 차별 그리고 혐오의 문제를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주인공의 입장이 되어 웃고 울다보면 차이를 존중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초원의 연꽃
린다 수 박 지음, 김경미 옮김
다산기획 2021
린다 수 박은 아시아계 작가로는 처음으로 뉴베리 상을 수상했지만 한국어를 모른다. 한국인 부모는 딸이 그저 무사히 미국 사회에 적응하기를 바랬던가 보다. 작가는 뒤늦게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자각하고 한국 역사와 문화를 담은 동화를 쓰고 있다. 신작 <초원의 연꽃>은 동양인 차별에 관한 진실을 담고 있다. 배경은 19세기 초 미국 라포지다. 중국과 한국 혼혈인 엄마와 백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한나가 백인들의 편견 어린 시선에 정면으로 맞닥뜨려야 하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여기에는 린다 수 박의 자전적 이야기가 숨어있다. 작가가 어릴 때 가장 좋아했던 책은 로라 잉걸스 와일더의 <초원의 집>이었고 주인공 로라의 친구가 되는 상상을 하곤 했다. 하지만 <초원의 집>은 인종차별적 요소가 많이 담긴 책이었다. 정말로 옆집에 살았다 해도 동양인이 백인인 로라의 친구가 될 수는 없었다. 이 사실을 깨달은 건 한참 후였고, 이런 차별의 경험이 <초원의 연꽃>에 담겨있다.
차별의식은 언제 생기는가를 알려주는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한나가 학교에 다니자 백인 아이들이 대놓고 따돌리고 아무도 말을 걸지 않는다. 유일하게 여덟 살 어린아이가 한나에게 물을 떠달라고 부탁한다. 한나가 학교에서 나눈 첫 대화였다. 아직 어려서 동양인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어린 소녀는 금방 차이를 차별로 대하는 법을 학습할 테다. 하지만 한나를 무릎 꿇리려는 편견과 오해 앞에 포기하지는 않는다. “세상은 부당하고 할 수 있는 건 없어 보이지만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싸워야 한다”는 엄마의 유산을 되새기고 행동한다.
엄마와의 추억, 재봉 일에 대한 열정, 드레스메이커가 되고 싶은 꿈 등 한나의 이야기와 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이 잘 엮인 수작이다. (초등5-6)
바람을 가르다
김혜온 지음, 신슬기 그림
샘터사 2017
초등학교에서 특수교사로 일하는 김혜온 작가의 단편집이다. 장애를 지닌 어린이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어떤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장애인을 대할 때 업신여기거나 불쌍하게 여기거나 둘 중 하나다. 약자를 혐오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사실은 그래도 인정한다. 그렇다면 장애인은 약자이니 무조건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옳은가. 선량한 교양인의 태도라고 여겨지는 이 생각을 작가는 짚고 넘어간다. 어떤 태도건 실은 내면에 차별의 전제가 깔려있다.
<바람을 가르다>는 지금껏 소개되었던 어린이문학의 ‘장애 어린이 돕기’라는 공식을 깬다. 읽고 나면 등장인물이 불쌍하고 슬프다기보다 시원하고 통쾌하다. 주인공 찬우는 뇌병변 장애를 지녔다. 말도 행동도 부자연스럽다. 이런 찬우가 사고뭉치 용재와 짝이 되었다. 지금까지 엄마도 담임도 아이들도 찬우를 유리그릇처럼 대했다. 혹시나 잘못될까, 혹시나 다칠까 철저하게 보호했다. 용재만 다르다. 저래도 되나 싶을 만큼 찬우를 똑같은 친구로 대한다. 사건 사고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한바탕 소동을 겪고 찬우는 이렇게 말한다. “요, 용재 덕분에 처, 처음으로 자전거도 타, 타 봤어, 용재는 자, 잘못한 거 없어. 나 좀 다, 다치더라도 치, 친구들과 같이 해 보고 싶어. 이, 이렇게 조, 조심만 하고 살다간 어, 어른도 모, 못 될 것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