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는 책을 만드는 사람이다. 책의 원고는 저자가 쓰고 독자는 그 책의 주인이 된다. 저자와 독자 사이, 직업인으로서 편집자의 존재는 세상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서지 정보를 기록하는 페이지, 판권란에 편집자 이름이 적혀 있기도 하지만 그것은 책임과 의무에 대한 객관적인 표기다. 그런데 이상하다, 요즘 부쩍 편집자들이 저자가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책의 세계를 알려주려는 것일까. 어떤 직업이든 그 세계는 우리 사회와 깊게 연관되어 있다. 편집자란 직업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책도 있고 유년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든 편집자의 책도 있다.
에세이 만드는 법
이연실 지음
유유 2021
문학동네에서 에세이를 주로 만드는 이연실 편집자의 책이다. 제목만 보아서는 책 만드는 기술을 가르쳐줄 법한 실용서 느낌이 나지만 꼭 그렇진 않다. 유머러스하고 역동적인 일의 스토리텔링은 화려하다. 마치 소설 주인공에게 빠지듯 이 에세이 저자에게 감정이입이 될 정도로 가독성이 좋다. 책을 만드는 사람, 책을 쓰려는 사람, 책을 읽는 사람에게 영감을 줄 대목이 많아서 웃으며 읽다가 그 고된 노동에 박수를 치게 만든다.
책의 부제가 ‘더 많은 독자를 상상하는 편집자의 모험’이다. 모험의 성격이 그러하듯 이연실 저자는 책의 기획-저자 섭외-편집-디자인-홍보-마케팅 단계에서 거침없이 질주하고 부딪치며 앞으로 나아간다.
“에세이는 한 사람의 결과 바닥을 그대로 드러내는 적나라하고도 무서운 장르라고 생각한다. 좋은 에세이가 되는 삶을 살아온 작가와 같이 일하고 노는 시간을 사랑한다”고 고백한 저자. <에세이 만드는 법>이 바로 그렇게 편집자의 결과 바닥을 다 드러내고 있다.
김용택 시인, 김훈 시인, 김이나 작사가, 요조 작가, 임경선 작가, 서명숙 선생, 이슬아 작가의 책을 만들며 겪은 에피소드는 사람이 하는 일에서 상대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보여준다.
작은 책에서 생명력이 솟아나는 느낌, 아마도 저자인 이연실 편집자 캐릭터가 그렇게 뜨겁고 긍정적인 것이겠다. 책의 세계에서도 세상살이는 계속된다.
막내의 뜰
강맑실 지음
사계절 2021
그림책과 인문서를 꾸준히 펴내는 사계절 출판사 강맑실 대표는 편집 경력이 40년이 넘는다. 출판 현장에서 자주 목격한 그는 비상한 탐구력과 관찰력의 소유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책을 쓰고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 <막내의 뜰>이란 정감 어린 제목의 아름다운 책은 편집자가 저자가 되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 책을 통해 편집자의 글은 정확하고도(교열을 직업으로 삼았으니!) 울림이 크다(주제가 대단하다!)는 것을 일깨웠다.
교육자이신 아버지의 잦은 발령으로 유년 시절에 여러 관사를 전전한 저자는 일곱 채의 집으로 독자를 이끈다. 일곱 남매의 막내인 그는 성장기에 발견한 죽음과 생명의 기운, 자연이 주는 활기와 사람의 온기를 소설처럼 동화처럼 기록했다. 집의 평면도를 그린 그림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읽는 사람의 유년을 불러오고 겹쳐 읽게 하는 마법을 부린다. 우리 모두 아이였던 세계, 유년의 세상은 얼마나 신비로운가.
“과거는 구원을 기다리고 있는 어떤 은밀한 목록을 간직하고 있다”는 발터 벤야민의 말을 인용한 강맑실 저자는 그 구원의 목록이 가득했던 유년을 향한 그리움으로 책을 내게 되었다고 한다. 책을 만들며 더 자유롭고 평화로운 세계를 일구는 데 기여한다는 사명감을 가졌던 편집자는 저자로서 그런 세계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
<막내의 뜰>에는 대가족의 세계 속에서 자아를 찾고 관계를 구축하는 주인공이 있다. 그 주인공은 성장하여 편집자가 된다. 편집자는 그 세계를 작품으로 쓴다. 아, 아름다운 순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