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서울국제도서전이 서울 성수동 복합문화공간 에스팩토리에서 열렸다. 코로나라는 특수 상황으로 입장 인원을 제한했고 참여 출판사가 대폭 줄었다. 과거보다 부스는 작지만 ‘민음사’ ‘열린책들’ ‘우리학교’ ‘어크로스’ ‘문학동네’ 등의 출판사를 오프라인 마켓에서 만날 수 있었다. 또 오랜만에 정유정이나 정세랑 등 작가들을 오프라인 강의와 대담 등 현장에서 만날 수 있었다.
이번 도서전에는 몇 가지 흥미로운 기획전시가 마련되었다. 우선 국내 웹툰과 웹소설의 역사와 유명 작품을 소개한 전시가 있었다. 전시장에는 팬들이 작가 코너 마다 써놓은 응원 메시지가 가득했다. 또 1963년부터 독일 북아트재단이 주최해온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전시도 있었다. 만듦새와 디자인이 아름다운 국내 작품 중 10권을 선정하여 전시하고 있다. 이와 연계하여 분야별로 ‘편집자와 평론가가 뽑은 아름다운 책 50선’을 발표했는데 이 중 두 권의 책을 소개한다.
달에서 아침을
이수연 지음
위즈덤하우스 2020
그래픽노블 분야에서 아름다운 책으로 선정된 작품이다. 그래픽노블이란 ‘문학성이 높은 만화’를 일컫는 말이다. <달에서 아침을>은 전형적인 만화라기보다는 그림책과 그래픽노블의 형식이 혼재된 또는 두 장르의 장점을 한 권에 담은 책이다. 만화의 칸 구성 방식을 활용하되 자유롭게 지면을 사용하고 있다.
토끼가 곰의 옆집으로 이사를 오며 둘은 친구가 되었다. 한데 같은 반 비둘기가 토끼를 대놓고 따돌린다. 곰은 밤늦게까지 토끼와 영화와 음악 이야기를 할 만큼 친하지만 정작 학교에서는 다른 태도를 취한다. 토끼를 모른 척한다. 왕따를 당하는 토끼와 친구라는 게 알려지면 자신도 괴롭힘을 당할까 봐 두려워하는 방관자다. 학교는 혼자 숨어있기 참 힘든 곳이다. 외톨이는 힘들 수밖에 없고 혼자 있는 토끼는 언제나 아이들에게 먹잇감이 된다.
이 책은 곰이 토끼의 곁으로 다가가는 용기를 내는 과정, 진짜 친구가 되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이유 없이 학대를 받는 길고양이와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서사가 교차 편집되듯 엮여 전개된다. 특히 오드리 헵번이 출연한 ‘티파니에서 아침을’이라는 영화가 토끼의 마음을 상징하는 주요한 모티브로 등장 한다.(책의 제목도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자기 세계가 견고한 십 대가 무리에서 터부시 당하는 일은 종종 일어난다. 이럴 때마다 토끼는 달로 갈 테다. 외로울 때마다 오드리 헵번처럼 꿈을 꾸는지 모른다. 이곳이 학교가 아니라 달이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견딜만하지 않을까. 마지막에 이르러 토끼는 곰과 고양이와 함께 달로 간다. 현실과 환상이, 삶과 영화가 서로 흘러들어 묘한 정서와 여운이 남는 작품이다. 작품의 주제의식 말고도 글로 말하지 않는 그림의 이야기와 정서가 아름다운 책이다.
지금은 여행 중
김우주 지음
창비 2020
김우주 작가의 첫 작품집이다. <지금은 여행 중>에 담긴 8편의 단편은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에게 이름이 없다는 사실이다. 누구도 이름으로 불리지 못한다. 예컨대 단편 ‘누구’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모두 번호로 불린다. 도시 한복판에 자리한 학교에서 아이들은 1이니, 3이니, 11이니, 15니 하는 식으로 번호로 호명된다. 갑자기 나타난 개구리 때문에 교실의 정적이 깨지고 누군가 사라졌는데 그 아이가 몇 번인지조차 모른다.
작가는 ‘이름 없는’ 지구의 아이들에게 누군가를 보낸다. 혹은 뜻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이름 없는 아이들의 누군가가 되어주는 순간을 그린다. 이름 없는 아이들에게 누군가가 나타나는 순간, 마음에 단단하게 걸린 것이 쑥 내려앉는다. 울음이 날 것처럼 눈가가 매워진다. 특히 단편 ‘어느 날 누군가가’와 ‘지금은 여행 중’은 이름 없는 아이들에게 ‘누군가’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절절하게 그려낸다. 만약 작가가 우주의 친구든, 혹은 미래의 아빠든 누군가를 보내지 않았다면 나라도 가야 했을 만큼 아이들은 절박하고 외롭다.
‘어느 날 누군가가’에서는 어른이 된 ‘미래의 아들’이 아빠를 찾아온다. 병에 걸린 마흔 한 살의 아빠를 찾아가 치료를 하려던 미래의 아들은 실수로 열한 살의 아빠를 찾아온다. 바로 목표 지점을 수정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열한 살의 아빠와 캐치볼을 한다. 이름 없는 열한 살 소년은 아빠가 죽고 없다. 아빠 자랑을 하는 친구 때문에 마음에 응어리가 맺힌 순간이었다. 간절하게 아빠가 필요했다. 미래의 아들은 이 사실을 알았기에 미래의 아빠를 두고 떠나지 못한다. 미래의 아들은 “지금을 안타까워하지 말아요, 어느 날 누군가로 당신 앞에 나타날 테니까.” 라는 말을 남기고 자기의 세상으로 떠난다.
아이들에게 나타난 누군가는 어쩌면 외로운 아이들이 만들어낸 판타지일 수도 있다. 어쩌면 누군가들은 자신이 아이에게 어떤 역할을 해주었는지조차 모를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가 잠시 곁에 머물러 주고 손을 잡아 줄 때, 이름 없는 아이들이 힘든 지구 여행을 할 수 있다. 이 마음의 공명을 느낀다면 <지금은 여행 중>이 보여준 아름다움에 가슴이 먹먹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