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넷, 시인 남편과 사는 이근화 시인의 시집 제목이 강렬하다. ‘뜨거운 입김으로 구성된 미래’는 어떻게 다가오는가. 시인은 보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곧잘 그림 그리는 네 아이와 생활하고 있다. 곰팡이조차 사랑스럽다는 듯이 오래 공들여 보는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그 시선을 공유하는 것, 이것이 시인의 시 쓰기 작업의 원천이다.
일 년 전 시인은 <아주 작은 인간들이 말할 때>라는 산문을 출간했다. 작은 인간들이 말하는 연민과 사랑 같은 것이 세상을 살게 한다는 주제의 글에는 큰 것들의 평평한 세계에 가려진, 작은 것들의 특별하고 풍요로운 세계가 담겨 있었다. 정치와 협잡, 개발과 이익, 세계화와 자본주의 같은 세속의 거대담론이 아닌 우리 삶의 자리를 되돌아보는 끝없는 성찰과 발견이 시의 언어로 환하게 빛났다.
신작 시집 <뜨거운 입김으로 구성된 미래>에는 섣불리 삶을 개혁하자는 구호나 분노하는 정서 없이 반복되는 지리멸렬 속에서 미래를 꿈꾸고 열걸음 스무걸음 꿈에 다가가는 시인의 낮은 목소리가 울린다.
“박힌 못을 빼내는 대신에/ 걸어둘 것을 서둘러 찾는다/ 열걸음 스무걸음/ 나머지 한발짝을 남겨둔다/ 누덕누덕 기운 자루를 끌고 간다” (<악수> 중에서)
‘생활 속에서 터져 나오는 슬픔과 화를 응시하는’ 힘으로 뜨거운 입김을 부는 시인은, 종종 존재가 지워지는 듯한 현실에서 역설적으로 새로운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생각 속에서 무너진 우리는/ 왼발을 쭉 뻗어 닿을 수 있는 세계와/ 오른발을 쭉 뻗어 닿을 수 있는 세계 사이에서/ 소리 없이 웃는 연습을 한다” (<우리는 영원히> 중에서)
일찍이 시인은 생각은 가만히 내버려두면 식물처럼 시들고 썩어버린다고 했다. 서로 다른 식물들인 우리는 저마다 생각을 가꾸는 고유한 방식이 있겠지만, 생각이 그저 생각으로 뻗어나가는, 그래서 결국 썩어버리게 하면 곤란하다고. 생각이 발을 뻗어 왼발과 오른발이 나아가게 하는 운명을 살아내야 한다고.
살면서 느끼는 허무의 감각, 갈증을 맨몸으로 푸르고 거칠게 덜어내는 시인의 언어들에서 찢긴 희망을 기우게 된다.
“시접을 넣는다는 세탁소 아저씨의 말을 생각해본다/ 백광이나 거성, 이런 가게 이름을 중얼거려본다/ 크고 환한 별이 뜬다면 내 머리 위의 일은 아닐 것이지만/ 어떤 기다림 위에 명랑할 것, 지치지 말 것/ 이렇게 지키지 못할 약속을 중얼거려본다” (<물방울처럼> 중에서)
명랑할 것, 지치지 말 것 같은 쉽지 않은 약속을 눈물 방울 떨어뜨리며 중얼거리는 시인의 시를 읽으며 시접 넣는 마음을 기억한다. 옷 솔기 가운데 접혀서 들어간 부분인 시접 같은 마음으로 희망을 기우는 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