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츠티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사진가는 인생의 큰 상실을 겪고 그 감정을 이해하고 잘 바라보기 위해서 글을 쓰고 사진을 찍었다.
슬픔의 다섯 가지 극복 단계인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구성으로 본문을 배열하고 사진기 렌즈의 조리개값을 붙여 마음을 드러냈다. F1.4, F2.0, F3.5......에서 F는 렌즈의 조리개값이다. F1.4의 눈은 초점이 대상에만 집중하고 그 너머를 보지 않는다. 조리개값이 커질수록 초점 범위는 넓어지고 주위를 살피게 된다. 나와 사람들 관계의 맥락 속에서 자신의 현재를 확인하게 되는 작업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에 실린 사진 작품으로 귀결되었다.
상실의 슬픔을 인정하고, 슬픔을 충분히 숙성시키려는 사진가의 마음이 글과 사진을 통해 고스란히 전달된다.
첫 챕터 ‘절벽에 매달린 나의 밤으로’부터 여덟 번째 챕터 ‘사랑 장례식’까지, 카메라 렌즈의 조리개값이 커지면서 상실은 사랑으로, 애도의 감정은 삶의 빛으로 번져간다.
“그는 울지 못하는 병에 걸렸다. 어느 날 밤 슬픔이 그를 휘감았다. 제대로 한번 울어보고 싶었다. 마트에서 양파를 사 왔다. 바닥에 신문지를 깔았다. 슬며시 눈에 문질러보았다. 그렇게 몇 번 갖다 대자 뭔가가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그날 밤 오랫동안 숨어 있던 그의 눈물길이 드러났다.”
‘투명한 울음’이라는 제목의 글이다. 울고 싶은 순간에 울지 못하는, 자신의 원초적인 감정조차 표현할 수 없는, 꼼짝도 할 수 없는 난감함이란 얼마나 절망적인가. ‘숨어 있던 눈물길’에서 맑은 물이 흘러나오기를, 그 물을 통해 영혼이 정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양파라는 구체적인 사물이 동원되면서 더욱 절박하게 느껴진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에서 가장 인상적인 글을 꼽으라면 ‘아저씨, 왜 우세요?’다. 택시운전사와 손님이 어쩌다가 가족 이야기를 나누면서 운전사가 울기 시작한다. “모두에게 미안해서요. 나 때문에 가족들이 힘든 상황에 처했거든요. 내가 실패해서, 가족들 생각하면 이렇게 눈물이 납니다.”
자기 연민이 아닌 가족과 타인을 위해 흘리는 눈물은 아름답다. 우리에게는 공감과 연대라는 삶의 무기가 있다. 승자와 패자로 나뉘지 않고 함께 가는 세계. 이 사진 산문집에는 그런 세계로 나아가는 슬픔이 흥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