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윤여정이나 유튜버 박막례처럼 일흔이 넘어도 멋지고 씩씩한 할머니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으레 꼬부랑 할머니부터 떠오르던 과거와 사뭇 달라진 현상이다. 일흔이 넘어 오스카상을 받은 배우 윤여정이나 유튜버로 맹활약을 하는 박막례는 할머니도 충분히 멋질 수 있다는 걸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실 할머니는 어린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부모와 자녀 사이는 왠지 긴장 관계가 있지만 할머니와 어린이의 관계는 다르다. 할머니는 숨은 조력자 역할을 마다하지 않으며 언제나 어린이 편에 선다. 어린이의 수호자다. 그럼에도 할머니는 가정에서 사회에서 약자였다. 최근 작품에서 할머니가 달라지고 있다. 부모세대보다 더 진취적이고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현실에서 당당한 할머니들이 등장하는 것과 조응하는 현상이다. 과거와 오늘의 할머니를 그린 두 작품을 통해 이 모습을 확인해본다.
할머니
페터 헤르틀링 지음
비룡소 1999
1976년 독일 청소년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할머니 세대의 특징이 잘 그려진 작품이다. 주인공 칼레는 부모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후 할머니와 둘이 살게 된다. 칼레에게 할머니는 그야말로 이상하다. 할머니는 언제나 화난 것처럼 목소리가 크고 퉁명스럽다. 가게 주인과 말싸움이라도 하면 지는 법이 없다. 거침없이 욕도 잘해서, 빵집 주인은 할머니를 무서워한다. 뿐만 아니라 할머니는 어제 일은 기억도 못하면서 40년 전 일은 생생하게 떠올린다. 칼레는 관심도 없는 것들이다. 칼레는 내일 친구와의 약속이 중요한데 할머니는 옛날이야기만 한다. 심지어 텔레비전의 옛날 영화를 보며 혼자 중얼거리며 대화도 한다!
사실 이런 모습은 칼레 할머니만의 일이 아니다. 노년기의 보편적 특징이다. 과거를 사는 할머니를 미래를 살아갈 손자가 속속들이 어찌 이해할까. 그래서 작가는 에피소드가 끝나면 할머니의 독백을 짧게 넣는 방식으로 할머니의 속마음을 보여준다. 칼레와 할머니는 싸우고 오해도 하지만 조금씩 달라진다. 칼레는 할머니의 보이지 않는 진심과 할머니 세대가 세상을 살아간 방식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두 사람이 함께 양로원에 다녀온 날, 칼레는 할머니에게 “만약 늙게 된다면 할머니만큼 늙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어린이에게는 부모뿐 아니라 조부모도 그 밖의 다양한 어른이 필요하다. 삶은 여러 모습을 지니며 자기 자리에서 건강하게 살아가는 어른을 보고 배우며 아이들은 자라는 법이다.
순례 주택
유은실 지음
비룡소 2021
누구에게나 나이 든다는 것은 피하고 싶은 일이다. 그럼에도 가끔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어르신을 만나면 기쁘다. 유은실의 <순례 주택>에서도 그런 할머니를 만날 수 있다. 바로 순례 씨다.
일흔다섯 살 순례 씨는 세신사로 일해 번 돈으로 다세대 주택을 지었다. 이름하여 ‘순례 주택’이다.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세를 놓고 사람들과 어울려 산다. 오래 연애를 한 수림이 할아버지의 부탁으로 수림이를 키웠다. 이제 열여섯 살이 된 수림이는 제 피붙이 가족보다 순례 씨와 둘도 없는 사이다. 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난 후 수림이 가족이 순례 주택에 들어와 살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동안 수림이의 엄마와 아빠와 언니는 할아버지의 돈으로 떵떵거리며 철없이 살아왔다. 이 망해버린 가족을 순례 씨와 수림이가 구원한다.
자연스럽게 일흔이 넘은 할머니 순례 씨와 수림이의 부모가 비교된다. 둘 중 누가 더 잘살고 있는지, 누가 더 진짜 어른인지 말이다. 작가는 순례 씨를 통해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를 독자에게 묻고 있다. 한참 전에 어른이 되었다고 여긴 나 역시 순례 씨 만큼만 잘 늙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내가 번 게 내 돈이 아니라 내가 벌어 내가 쓴 것만 내 돈이다’, ‘관광객은 요구하고 순례자는 감사한다.' 순례 씨는 이런 신념에 따라 썩지 않는 쓰레기가 될 물건은 사지 않고, 이산화탄소 배출을 막기 위해 비행기를 타지 않는다. 하지만 스마트 티브이 작동법을 배우고, 여전히 시집을 읽으며 젊게 산다. 우리는 우선 자신을 위해서 잘 늙어야 한다. 나아가 미래 세대를 위해서도 잘 늙어야 한다. 순례 씨는 그 자체로 십 대에게 삶을 보여주는 어른이다. 어린이와 청소년의 문제는 모두 어른의 문제라는 말이 있다. 당연하다. 진짜 어른을 봐야 제대로 된 어른으로 자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