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어린이들이 책과 친해지는 최고의 방법은 재미있는 책을 만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흥미진진한 동화책을 만나 흠뻑 빠져보는 경험을 해야 한다. 팬데믹 여파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지만 그래도 방학은 편한 마음으로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다. 추운 겨울 아랫목에 배를 깔고 누워 귤을 까먹으며 책을 읽던 기억처럼 추억이 있어야 책 읽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다. 이번 겨울방학에는 어린이들이 “그 책 참 재미있었는데”하고 두고두고 기억할만한 흥미진진한 책을 꼭 만났으면 한다. 겨울방학 특집으로 그런 책들을 소개해 본다.
누가 올까?
이반디 지음
사계절 2021
이반디 작가는 <꼬마 너구리 요요>에서 요요의 서운하고 질투가 나는 마음을 어린이의 언어로 탁월하게 그려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번 작품집에서도 어린이의 순진한 세계를 특유의 감수성으로 생생하게 그려 냈다. 이반디 작가의 동화를 읽고 있자면 어린이의 마음으로 스며든다고 할까, 그런 느낌이 절로 든다. 예컨대 ‘고양이의 수프’ 같은 단편에서는 아직도 세상 모든 것과 교감할 줄 아는 어린이의 모습이 따뜻하게 그려 진다. 주인공 아라는 고양이들에게 솜사탕을 나눠준다. 고양이들은 이 친절에 보답하려고 아라를 초대하고 고양이 수프를 대접하고 선물도 나눠준다. 빨간 실뭉치, 플라스틱 구슬과 낡은 인형이다. 아라는 너무 기뻐 선물을 가지고 돌아와 엄마에게 자랑했다. 하지만 엄마는 “그런 거 주워오지 말래도 더럽잖아.”라고 말한다. 모르는 이에게 친절을 베풀고, 기뻐하고 친절에 보답하는 세계, 어린이의 세계란 이런 것이다. 읽고있자면 마음이 맑아진다. 1-2학년 어린이들이 혼자 읽으면 좋을 책이다. (초1-2)
위대한 마법사 달벤
로이드 알렉산더 지음
문학과지성사 2008
저학년을 지나 이제 제법 읽기에 익숙해진 중학년 어린이들이 무섭게 책에 빠지는 계기가 있다. 시리즈물에 재미를 느끼는 경우다. 이때 가장 많이 읽는 게 추리 혹은 판타지다. 어린이들이 특히 좋아하는 판타지라면 단연 <해리포터>와 <나니아 나라> 시리즈다. 여기에 하나만 더 한다면 로이드 알렌산더의 <프리데인 연대기>를 빼놓을 수 없다. 돌킨의 <반지의 제왕>을 잇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을뿐 아니라 시리즈의 1권인 <비밀의 책The Book of Three>은 칼데콧 영예상을, 시리즈의 마지막 권인 <위대한 왕The High King> 칼데콧 메달을 수상했다.
저자는 시리즈의 처음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위대한 마법사 달벤>이란 제목으로 따로 발표했다. 이 책으로 <프레데인 연대기>를 시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프레데인 연대기>에 등장하는 마법사 달벤과 여러 인물에 관한 이야기 8편이 담겨있다. 시리즈의 프롤로그라고 했지만 단편이 독립적인 이야기로 읽힐 뿐 아니라 삶의 보편적 지혜를 담고있는 매력적인 책이다. (초3-4)
어린 여우를 위한
무서운 이야기
크리스천 맥케이 하이디커 지음
밝은미래 2020
부모는 싫어하지만 어린이가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 무서운 이야기다. <어린 여우를 위한 무서운 이야기>는 습지 동굴에 사는 늙은 이야기꾼 여우가 어린 일곱 마리 여우들에게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액자식 구성으로 전개된다. 늙은 여우가 들려주는 무서운 이야기가 한 대목씩 끝날 때마다 어린 여우들은 하나씩 엄마 품으로 도망을 간다. 마지못해 형제들을 따라 나섰던 막내만이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킨다. 작품의 메시지가 이 구성에 함축적으로 담겨있다. 결국 무서운 이야기란, 살며 닥칠지도 모를 위험에 대비하도록 삶의 지혜를 전하는 것이다. 어린이들이 이런 함축적 의미까지 알아채지 못해도 좋다. 그저 이 무시무시한 이야기의 재미에 빠져들어도 충분하다. 암 여우 미아와 숫 여우 율리가 정말 무섭고 아슬아슬한 모험을 겪는 이야기다. 한 번 잡으면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는 책이다. (초4-6)
나인
천선란 지음
창비 2021
문단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현상은 청소년 문학에서도 도드라진다.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을 수상했던 천선란 작가의 <나인>은 SF적 상상력이 이야기 속에 어떻게 녹아드는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어디서도 본적 없는, 작가가 펼쳐내는 식물적 상상력을 만나고 나면 독자는 이제 ‘천선란’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주인공의 이름은 유나인. 평범한 청소년이었던 나인은 어느 날 ‘식물들의 말소리가 들린다.’ 알고 보니 나인은 지구로 이주한 누부인이었다. 유지의 손끝에서 피어난 아홉 번째 싹으로 태어나 땅에서 자랐다. 여기에 2년 전 실종된 박원우 사건이 겹쳐진다. 나인은 식물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능력으로 박원우가 죽은 그 날의 진실을 듣게 된다.
우연히 사고가 일어나고 이를 은폐하려 들고 그럼에도 진실을 밝히려는 시도는 지금껏 많은 이야기 속에 반복된 패턴이다. 하지만 <나인>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펼쳐낸다. 진실을 찾아가는 영웅이 지금껏 지구를 지배한 잡식성 인간이 아니라 식물성 나인인 것이다. 지구의 혼재와 미래를 살리는 상생의 상상력이기도 하다. (청소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