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의미있는 여성 작가의 작품들 - 12월2주
수전 손택, 한강, 황정은, 이슬아와 함께 새로운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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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읽은 책들을 책장에서 한 권씩 꺼내보았다. 책장에는 못 읽은 책들이 더 많았고, 어떤 책은 앞부분만, 어떤 책은 중간에 삽입된 그림만 확인하고 몇 달 동안 덮인 채 있었다. 그래도 좋다고 생각한다.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한 생활에서 만져보고 들춰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흡족할 때가 많다. 책 가까이에서 산다는 기분, 문학적인 언어를 통해 상상력을 넓히며 살고 있다는 자족감이 있다. 읽은 책들의 거의 태반이 여성 작가의 작품이었다. 독서 편향이 아니었다. 올해 출간된 작품 중 여성 작가의 책들 비중이 높았다. 김금희, 김초엽, 박솔뫼, 손원평, 심윤경, 윤성희, 조해진, 최은미, 편혜영.....인상적인 작품들을 쓴 여성 작가들. 언젠가 독서 기록을 남겼던 최은영 작가의 <밝은 방>은 올해의 작품으로 꼽고 싶다. 그리고 수전 손택, 한강, 황정은, 이슬아 작가를 이야기하며 저무는 한 해 끝에서 새 마음을 얻고 싶다. 내 인생에 동행하는 작가들의 목소리에서 위로와 힘을 얻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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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수전 손택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에서 수전 손택의 목소리를 듣는다. 책의 원제는 ‘수전 손택을 회상하며’다. 수전 손택 가까이에서 일하고 같이 살았던 시그리드 누네즈 작가는 수전 손택 아들의 여자친구였다. 시그리드는 우리가 잘 몰랐던 수전 손택의 인간적인 삶, 취향과 버릇, 집착과 꿈에 대해서 낱낱이 기록했다. 하나의 비밀스러운 사실이 밝혀질 때마다 나는 놀랐고 또 웃었다. 사후에 그를 회상하며 펴낸 글은 위험하다. 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한편 매혹적이다. 적나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까발림이 아니라 내밀한 삶의 속살을 드러내어 대상 인물의 입체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글이 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사는 방식>은 성공한 듯하다. 수전 손택의 오만함과 소탈함, 아이 같은 천진함과 비평가로서 냉철함의 근원인 가족사와 생활 방식이 흥미롭게 담겨 있다. 1960년대 평론집 <해석에 반대한다>를 통해 뉴욕 지성계의 별이 된 수전 손택은 인권과 사회 문제에 대해서 거침없이 발언했다. 몸을 사리지 않았다. 십대에 남자아이를 낳았고 이십대에 철학박사가 되었다. 홀로 아들을 키우며 신문과 잡지에 칼럼을 연재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컬럼비아 대학 등에서 철학 강의도 했다. 문단과 학계에서 주요한 인물이었던 수전 손택의 작품은 지금 우리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나는 수전만큼 예술과 인간의 아름다움을 열렬히 찬탄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나는 미의 광인이야’라고 수전은 수도 없이 말했다. 그런 한편 수전만큼 자연의 아름다움에 무감한 사람도 본 적이 없다. 수전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도시가 시골보다 우월한 것처럼 예술이 자연보다 우월했다. 어떻게 ‘20세기의 수도’ 맨해튼을 떠나 숲에서 한 달을 보내고 싶을 수가 있나?” 시골에 머물고 싶어하는 작가에게 수전 손택은 의아한 듯 이런 말을 건넸다. ‘미의 광인’이라는 표현에서 수전 손택의 사진과 영화 등 예술에 대한 집착이 드러난다. 수전 손택은 자연에 무감했고 이런 맥락에서 타고난 몸에 대해서도 무심했다. 평생 운동하지 않았고 자주 병에 걸렸다. 수전 손택에게 중요한 것은 건강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읽고 보고 쓰는 것이었다. 수전이 위험한 병에 걸렸을 때도, 스스로 불굴의 존재로 느끼고 있었다는 것은 매우 이상한 경지다. 몸을 아끼지 않고 사용하면서 어떤 일을 해낼 생각을 하다니. 이 지점이 내게는 낯설었다. 예술의 아름다움에 열렬히 감탄했고 치열하게 사랑했고 냉철하게 글을 썼던 수전 손택. 그러나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아 끝내 병사했던 인물의 삶을, 가까이에서 살았던 작가의 필치로 느낀다.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언제나 새로운 질문과 감동을 안고 있다. 수전 손택의 면모를 새롭게 이해하는 것은 이 책 때문에 가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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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부커상 수상으로 전세계의 문학 독자들이 한강을 알게 되었다. 한강의 작품은 이제 한국어로만 읽히지 않는다. 한강 작가가 5년 만에 출간한 신작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펼치며 들뜨고 설렜다. 들뜬 마음은 소설 초반을 넘기며 이내 차분해졌다. 소설 속 세 여성의 인연과 국가의 역사는 매우 시적인 문장들로(한강은 시인으로 등단했다) 읽는 사람을 제주도의 먼 산간 지역으로 데려갔다. 소설에서는 자주 눈이 내렸다. 이마와 뺨에, 윗입술에 인중에 내려앉은 눈은 ‘가는 붓끝이 스치는 것 같은 무게뿐’이었고 금세 물이 되었다. 이 눈은 죽은 자의 얼굴에서는 녹지 않는다. 체온을 상실한 주검은 눈을 그대로 받을 뿐이다. 눈은 주검에 맺힌 채 차갑게 쌓인다. 눈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던 것이다. 소설 속 작가 ‘경하’는 역사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글을 쓰며 악몽에 시달린다. 수면의 질이 나빠지고 호흡이 짧았던 날들 속에 역사에 기록된 죽인 자와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상한 꿈을 꾸며 시작된 99그루의 나무 심기와 나무에 눈이 쌓인 모습을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남기자던, 친구 ‘인선’과의 약속도 잊고 지냈다. 그러다가 인선을 다시 만난다. 제주도 산간 지역에서 목수로 일하던 인선은 작업 도중 손가락 두 개가 절단되고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다. 인선은 경하를 호출하고, 입원하는 동안 집에서 기르던 새를 돌봐달라며 산간의 집으로 가달라고 당부한다. “새는 어떻게 됐을까. 오늘 안에 물을 줘야 살릴 수 있다고 인선은 말했다. 그런데 새들에게 오늘은 언제까진가.” 경하의 독백은 고통스럽게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새에 대한 상념으로 이어진다. 따뜻한 피가 도는 조그만 몸을 가진 새는 어떤 상징으로 남는다. 이 세상에 가벼운 목숨은 있을 수 없다. 인선의 어머니 ‘정심’은 4.3사건의 피해자. 사람의 목숨을 새털보다 가볍게 여긴 학살자들, 죽은 자들 얼굴 위에 쌓인 눈처럼 역사는 쉽게 사라지거나 녹아내리지 않는다. 인선과 어머니의 사연, 경하의 애정은 깊고 두텁게 연결되어 역사 속 사람들, 살아남은 사람들이 전하는 사랑을 잊지 말자고 한다. 문학적인 은유 속에서 역사의 처절함은 더 강렬하다. 어떻게 이 역사와 작별할 수 있는가. 사랑으로 남은 사람들과 헤어질 수 있는가. <작별하지 않는다>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내가 올해 잊고 산 것은 무엇일까. 작별할 수 없는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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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의 중요한 이름, 황정은 작가의 첫 산문집이다. 산문집의 첫머리에 운동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소설을 쓰는 작가이고 하루 작업의 질은 대체로 원고 앞에서 버티는 시간의 양에 달렸다. 버티는 문제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이 내 경우에 척추와 디스크다. 허리 디스크 질환을 겪은 뒤로 운동을 시작했다. 의식해서 호흡하고, 먼 것을 보고, 몸을 데우고 땀을 흘려 피를 잘 흐르게 하는 운동으로 내게 가장 유효한 것은 여전히 걷기/산책이다.” 이 산문집이 쓰인 기간은 팬데믹 시절. 따라서 운동에 대해서 특별한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는 서술이다. 멀리 떠날 수도, 사람을 편히 만날 수도 없는 상황에서 황정은 작가는 일기를 쓴다. 문장을 쓰면서 스트레스를 푼다고 한다. 소설 문장을 쓰느라고 긴장한 뇌를 이리저리 풀어준다는 느낌으로, 아무렇게나 쓴다고 했다. 이 산문집의 토대가 되었을 원고는 ‘아무렇게나 쓴’ 것이라고 작가는 말하지만 <일기> 책은 절대로 아무렇게나 쓴 글은 아니다. 인종차별과 혐오, 개인과 국가, 바이러스와 몸에 대한 투명할 만큼 명료한 글이 엮였다. “팬데믹을 겪으면서 부쩍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누군가가 어떤 노동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 어떤 형태의 가난을 겪고 있는지, 어떤 정책이 부재한 채로 그 부재의 영향을 받으며 사는지, 사람들이 일년째 목격한 바와 같이. 팬데믹은 다른 무엇보다도 한 사회의 구조를 드러내는 재난이니까.” 우리가 재난 속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작가는 멀리 내다보며, 가까이 관찰하며 적어 내려갔다. 사람들이 전염을 두려워하는 마음에는 병에 걸리는 걱정도 있지만 내가 매개가 되어 남에게 옮길까봐 걱정하는 것이라고, 이 걱정의 바탕이 어떤 우애가 아니냐고 작가는 그렇게 믿는다고 쓴다. 우리 사회에 대한 어떤 발언을 ‘너무 정치적’이지 않냐는 말을 듣곤 한다는 작가는 말한다. “누군가가, 그건 너무 정치적, 이라고 말할 때 나는 그 말을 대개 이런 고백으로 듣는다. 나는 그 일을 고민할 필요가 없는 삶을 살고 있다.” 뜨끔하다. 정치적인 발언과 문학적인 이야기를 경계 지었던 내게는 아픈 말이다. 황작가의 글은 정제되어 있는 차분한 어투로 자주 읽는 사람을 뜨끔하게 만든다. 평어체로 서술하다가 꼭 그런 대목에서는 “그렇지 않습니까.” 같은 존댓말이 등장한다. 이게 글맛이기도 하다. <일기>의 마지막 장은 매우 중요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쉽게 말할 수 없고 쉽게 말해지지 않았던 친족간 성폭력에 대한 고백이 실렸다. 낮은 목소리로 아프게 기록된 이 마지막 장을 덮으며 ‘다시는 쓰지 않을 글과 몇 번이고 고쳐 쓸 글’의 저력을 느낀다. 수치심은 성폭력 피해자의 몫이 아니라는 것을, 당연한 이 사실을 우리는 이렇게 또 자각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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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아’를 무어라 불러야 좋을까. 한국의 20대 여성 작가. 나온 지 한 달 된 <새 마음으로>의 표지 날개에는 작가 소개글이 없다. 프로필 사진 밑에는 ‘이슬아 李瑟娥 1992~ ’라고만 적혀 있다. 만화를 그렸고 글쓰기 교실 선생을 했으며 누드모델과 온갖 아르바이트를 해낸 한국의 청춘? 아니다, 이런 일과 관련된 소개로는 부족하다. 매일 구독자에게 글을 보낸 ‘일간 이슬아’의 발행인이라고 불러보자. 매일 글을 쓴다, 이 글을 구독자에게 전송한다는 형식은 이슬아 작가의 참신한 발상과 사람에 대한 깍듯한 예의, 성실한 태도를 말해주기 때문이다. 여기에 하나 더 설명을 부연해야겠다. 최고의 인터뷰어라는 수식이다. 이슬아 작가는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고 그 마음을 털어놓게 하는 데 일가견이 있다. 평범한 듯 털어놓은 그 말들에는 삶의 신고와 보석 같은 반짝임이 들어 있고, 어느 순간 다음 말을 기다리며 빨려들 듯 읽는 나 자신을 느낀다. 어떻게 이런 말들이 그 사람 안에 숨어 있었을까. 이것을 끄집어낸 이슬아 작가가 대단하다. <새 마음으로>는 오랜 노동을 통해 삶을 단련시킨 노동자들의 육성이 담겨 있다. 응급실 청소 노동자, 농업인, 아파트 청소 노동자 부부, 인쇄소 기장, 인쇄소 경리, 수선집 사장 등 일곱 명의 삶은 우리와 멀지 않다. 우리 이웃의 목소리, 유명하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노동하는 삶은 매우 흥미진진하고 구슬프고 씩씩하다. 이슬아 작가는 어떻게 이들을 인터뷰할 생각을 했을까. 역시 참신한 발상을 온몸으로 실천하는 젊은 작가다. “이 책의 주인공은 세월이라고 문득 생각했다. 세월이 더디게도 만들고 쏜살같이 흐르게도 만들었을 노동에 관해 다뤘다. 그 노동에 임하는 일곱 명의 어른들을 잠시 비췄다. 책에 모신 어른들이 부디 바라고 기다리던 모습의 자신이 되었기를, 언젠가 나 역시 바라고 기다리던 내가 되기를 소망한다.”는 이슬아 작가의 말은 이 책의 의미를 그대로 요약해서 보여준다. 일곱 어른의 삶은 무엇인가. 고되고 힘든 노동 속에서도 활기를 잃지 않았던, 노동하는 삶의 감각을 일깨운 이들. 이슬아 작가의 섬세한 정리로 인터뷰이의 말투가 살아 움직이는 <새 마음으로>는 무척 재밌다. 읽으며 일곱 어른들한테 인사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살아주셔서”. 스트레스를 안고 있으면 자신이 너무 상해버리니, 자꾸 새 마음을 먹어야 한다는 농업인의 말을 새해에 모토로 삼아야겠다. 자꾸자꾸 새 마음으로 일해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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