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의미있는 남성 작가의 작품들 - 12월4주
손석희, 송길영, 정지돈, 임명묵과 함께 한 발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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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끝에서 다가올 날들을 점친다. 개인은 사회와 동떨어져 존재하기 어렵다. 우리 사회의 변화와 중요한 이슈가 내 삶으로 그대로 틈입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 그래서 이 세계를 전망하고 개인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추동하는 책들을 연속해서 읽었다. 의도적으로 남성 저자의 책들을 골랐다. 20대에서부터 60대까지, 저자의 연령은 다양하다. 사회과학서부터 문학서까지 장르도 달랐다. 한 가지 공통점이라면 독자들에게 반응이 뜨거운 책들이라는 점이다. 4권의 책은 모두 우리 사회의 새로운 흐름을 이야기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지점을 짚고 있다. 뉴스 현장에서 맞닥뜨린 한국 현대사의 중요 사건을 브리핑한 손석희 전 JTBC 앵커, 빅데이터로 우리의 욕망을 읽고 미래를 넘겨보는 컴퓨터 전문가 송길영 바이브컴퍼니 부사장, 이십대의 눈으로 대한민국을 분석한 90년대생 임명묵 대학생, 걷기와 글쓰기에 대한 단상을 독특한 발상으로 써내려간 정지돈 소설가. 네 명의 시선은 교차되고 엮이며 내게 한 해 마무리의 내밀한 방식을 일러주었다. 진실은 단순하다는 것과 사회를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나 자신을 새롭게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새삼 각성했다. 책은 과거를 기록해도 미래를 위해서 읽힌다. 책 한 권 한 권은 미래를 이해하기에 적합하고 흥미로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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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2일 손석희 앵커는 마지막 뉴스를 진행했다. 2013년 9월 16일 JTBC 뉴스를 처음 맡은 이래 ‘S그룹 노사전략’ ‘팽목항 세월호’ ‘최순실 태블릿PC’ 등의 한국 사회를 흔들고 바꾼 사건들을 보도했다. 역사에서 과거 가정법은 의미가 없다지만, 손석희 앵커가 없었다면 한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본다. 공정과 상식, 품위를 뉴스 보도의 핵심 방향으로 삼는 손석희 씨는 <장면들>에서 뉴스의 맥락과 역사적 의미, 인간적인 고민을 풀어내며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를 전한다. 책을 읽는 동안 뉴스 장면들이 머릿속에 펼쳐졌다. 잊히지 않는 뉴스들은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삶에 영향을 미쳤다. “이 책이 주로 다룬 것은 저널리즘의 한 방법론으로서의 ‘어젠다 키핑’이다. 그 이전에 의제 설정 기능은 전통적인 미디어 이론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미디어가 단지 의제를 세우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 의제를 꾸준히 지켜냄으로써 선한 기여를 할 수 있다는 믿음은 그것과는 좀 다르다. 실제로 적용해서 그 성과를 얻어내지 않는 한, 이상적이고도 취약한 주장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손석희 씨가 밝힌 저널리즘의 역할과 의무는 함께 고민하고 토론할 가치가 있는 사항, 그러니까 어젠다를 지속적으로 발화함으로써, 실제적으로 사회 변화를 추동하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장면들>은 계속 질문한다. 뉴스 이후에 우리는 변했는가. 손석희 씨가 JTBC에서 만든 뉴스 시스템은 이전에 없던 것이었다. 앵커브리핑, 팩트체크, 문화초대석 등 기존 뉴스와 다른 다양하고 신선한 장면들이 기억에 남는다. 책에서는 이런 뉴스 형태가 자리 잡기까지 뒷이야기도 실렸다. 그리고 엔딩곡도 빠뜨릴 수 없다. 뉴스 말미에 흘러나왔던 노래들은 시사 이슈와 인터뷰 인물의 핵심 주제와 어우러져 방송이 끝나고도 긴 여운을 남겼다. 책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손석희 앵커의 마지막 뉴스 엔딩곡은 처음 뉴스를 맡은 날과 같았다. 밥 딜런의 ‘The Times They Are A-Changin'이었다. “지금은 더딘 누군가는 훗날에 빨라지리라 / 현재는 훗날 과거가 되듯이 / 질서는 급속히 사라져가리라 / 그리고 지금 앞선 자는 훗날에 가장 뒤처지리라 / 시대는 변하는 것이니”라는 노랫말을 되새겨보면 왜 엔딩곡으로 선택했는지 선명하다. “모든 것이 빨리 바뀐다고 해도 저널리즘이 미래적 가치로 지켜야 할 것이 어젠다 키핑이다.” 뉴스는 어젠다 키핑이다. 손석희 씨의 강조점은 <장면들>이 출간되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여전히 혼란스러운 우리 사회에서 더 논의되고 연구되어야 할 사항들은 과거에서 미래로 이어지고 있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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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서 자주 봐온 송길영 씨는 바이브컴퍼니 부사장이다. 이 기업은 수십억 개의 소셜미디어 글들이 담고 있는 각종 의견을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하여 자동 분석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온라인상에 쓰인 온갖 글들, 게재된 사진들에서 어떤 패턴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이른바 빅데이터를 통해 동시대 사람들의 욕망을 이해하게 된 것. <그냥 하지 말라>는 이런 빅데이터를 통해 우리가 살아갈 세상을 이해하고 나아갈 방향에 대해 조언하는 실용적인 책이다. 서술 형태가 ‘습니다’라는 경어체로 일관되어 있어 송길영 씨 저자의 목소리가 그대로 전달되는 느낌이다. 팬데믹을 겪는 우리의 분투도 빅데이터를 통해서 찾아낸 키워드로 요약해놓았다. ‘엄마는 파김치’ ‘고3은 초불안’ ‘김 대리는 생산성 집착’ 이라는 흥미로운 분석이었다. “코로나가 일으킨 변화를 돌아봄으로써 알게 된 건, 역설적이게도 이들 문제가 처음 튀어나온 게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생긴 변화가 아니라는 거예요. 엄마가 힘든 이유는 보육과 가사, 나아가 커리어 희생을 강요하는 한국사회의 여러 난맥상 때문입니다.” 가사노동, 무한경쟁, 저성장과 고용불안, 이 모두 우리 사회의 오래된 문제들이다. 다만 팬데믹 상황에서 이 문제들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빅데이터를 분석하며 깨닫는 것은 ‘미래 세상을 슬쩍 엿보게 해주던 작은 조짐과 징후들이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 사회의 크고 작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미래를 미리 본 자로서 할 말을 책으로 담은 셈이다. 팬데믹 이후 사람들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송길영 씨가 뽑은 ‘변화의 상수’는 세 가지다. ‘분화하는 사회’ ‘장수하는 인간’ ‘비대면의 확산’이다. 우리 사회는 1인 사회로 빠르게 분화하고 있고, 과거보다 훨씬 오래 살고 젊게 산다는 것, 그리고 기술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대면을 꺼리게 되어 비대면이 강화된다고 결론짓는다. 이렇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할 것인가에 대한 조언도 친절하다.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아도 더 창의적인 일을 하고 창의성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는 방향으로 인간의 일이 바뀐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플랫폼을 만들거나 장인이 되는 것, 즉 프로바이더가 되거나 크리에이터가 되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플랫폼을 소유하라고? 거대한 플랫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작은 비즈니스를 하되, 장인의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형태가 라이프스타일로 수렴되어 삶의 모든 스타일이 메시지가 되는 것이라고. 자기 것을 만들어야만, 오리지널리티를 가져야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저자의 목소리는 읽는 사람 각자에게 꽤 중요한 숙제를 남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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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생인 이십대 저자는 우리 사회의 계층 문제 등을 내면화하여 거침없이 발언한다. 냉철하되 사례가 풍부하고 자기 고백적인 글은 세대론에 기댄 서툰 세대단절론을 무화시킨다. 이십대가 쓴 대한민국론 <K를 생각한다>를 읽으며 급변하는 사회에서 개인의 행복을 발목 잡았던 문제점들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분석적인 글에서는 반성을, 대안을 제시하는 글에서는 희망을 보았다. 368페이지의 가볍지 않는 분량의 글은 5장으로 나뉘어 있다. 1장 90년대생은 누구인가, 2장 K방역이 말해주는 것, 3장 민족주의와 다문화에 관하여, 4장 대한민국 386의 일대기, 5장 입시, 그리고 교육의 본질. 그리고 참고문헌과 더 읽을거리를 자세히 기록해놓았고, 흥미롭게도 ‘감사의 말’을 9페이지에 걸쳐 다수의 실명을 들어 남겨놓았다. 책 본문에 언급되는 많은 책명, 인용 글 등에 신뢰를 갖게 하는 부속적인 페이지들이 인상적이었다. “이 책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시대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한국이 겪은 변화를 통해서 미루어보고, 그를 통해 다시 한국이란 무엇인지를 돌아보고자 하는 책이다. K는 그런 의미에서 단순히 ‘한국적’임을 뜻하는 접두사가 아니다. 실제 접두사로서 대문자 K가 쓰였을 때, 그 단어는 아주 복잡한 의미를 갖게 된다. 그것은 세계 속에서 인기를 몰고 있는 한국의 문화 콘텐츠를 찬사하는 말이 될 수도 있고, 개인의 권리를 억압하며 사회 전체적으로 고도의 편의를 보장해주는 국가의 동원 체제를 조롱하는 말이 될 수도 있다.” 저자는 책 제목에 붙은 K를 설명하며 본문을 연다. 90년대생, 방역과 국가, 민족과 다문화. 386세대, 입시와 교육 등의 주제들을 K가 갖는 복잡한 의미로 형상화했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무엇보다 90년대생에 대한 고백적인 글이다. 누가 대신해서 말할 수 없는 자기 이야기를 통해 세대, 사회를 이야기하고 있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고 경제적인 여건이 팍팍한 이십대들이 공정이란 가치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음을, 그래서 공정에 대해 다른 관념을 갖는 기성세대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글에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공적 영역에서는 집단적 사회운동이 퇴조하고, 사적 영역에서 가족주의조차 쇠퇴하는 가운데 90년대생이 추구하게 된 것’은 무엇일까. 인정 투쟁을 유도하는 SNS 환경과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분노 표출 공간의 부상 같은 문화적인 변화에서 간섭과 압력을 거부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 그들에게는 저성장, 고용불안 등의 위기감 속에서 그나마 예측 가능한 국가 시스템, 정서적 안정의 최소한의 기반이 흔들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래서 다른 가치를 추구할 새 없이 시스템의 예측 불가능성을 늘리지 않기를 바란다. 공정에 민감한 세대의 심리를 현실의 맥락 속에서 읽게 되니, 기성세대로서 정신이 번쩍 든다. 이 명민한 이십대 저자는 앞으로 어떤 책을 쓸 것인가. 출판인으로서 기대감도 상승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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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
문학동네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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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돈의 글은 매우 문학적이다. 문학하는 작가의 글이 문학적이란 것은 당연한 표현이겠지만, 앞선 세 권의 현실 효용적이고 분석적인 책을 읽고 나니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은 생명력 있는 문학의 가치로 다가왔다.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 개인의 삶에 대한 인식의 틀이 달랐다. 언어를 통해 다른 차원의 세계로 데려가는 책이었다. 서울과 파리를 거닐며 생각한 것들을 지적이고 유머러스하게 쓴 에세이다. 정 작가는 1930년대 출간된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사랑한다. ‘구보’라는 식민지 지식인의 내면 심리를 그리면서도 현실에 대한 시선을 놓치지 않는, 그 균형의 리듬을 좋아하는 것이다. 이 소설에는 당대의 풍물들과 습관들, 일상성을 이루는 현실이 생생하게 포착되어 있다. 주인공은 정해진 일 없이 하루종일 거리를 쏘다니며 유심하게 관찰한 것들을 사유하고 이야기한다. 모두 스치듯 지나는 군중 속에서 고독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는 ‘구보’는 이후 작가들에게도 매력적인 캐릭터로 자리 잡았다. 최인훈 작가, 주인석 작가는 같은 제목으로 작품을 써서 발표하기도 했다. 정지돈 작가는 소설이 아닌 에세이로서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쓴 셈이다. 책 속의 정지돈 작가는 실명의 친구들과 함께 서울과 파리에서, 떠돌며 관찰하고 생각한 것들을 기록했다. “예술을 하는 사람 중에 소비문화를 누리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으며 자본주의에 비판적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이런 걸 이중성이라고 할 수 있을까. 도시 산책도 그렇다. 방향감각을 상실하게 만드는 도시의 미로 같은 골목과 상점들 속에서 환각과 희열, 공포를 느끼는 ‘아해’가 되기엔 내비게이션과 지도 앱이 너무 발달했다.” 21세기 ‘구보’라고 할 수 있는 정지돈 작가는 현대성을 간파했다. 우리는 순진한 산책자가 될 수 없다. 도시를 가로지르고 발견하고 걷기 위해서는 도시를 배워야 하고 발화해야 하지만 기술의 발달은 걷고 말하는 데 방해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더 이상 미로도, 자기만의 발견도 가능하지 않은 도시인의 산책은 평평하고 무미건조할 수밖에. 정 작가는 되묻는다. 왜 산책자가 되어야 하는가. “보행-발화를 못하는 도시는 말을 잃는 도시, 죽은 언어의 나라다”는 말로 답한다. 문학은 산책자와 연결된다. 살아 있는 문학은 거리에서, 현실에서 길어올려진다. 상상력은 현실에서 피어오르는 것이고. <걷기의 인문학>을 쓴 리베카 솔닛은 말하지 않았는가. ‘산책은 머릿속에서 대단한 모험을 경험하기 위한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이다. 우리는 걸으며 생각하고, 관찰하며 발견하고, 발견하며 새로워지는 존재다. 정지돈 작가는 거대담론이 아닌 소소한 에피소드로, 그러나 매우 문학적이고 독창적인 시각으로 그런 존재감을 드러냈다. 앞으로 찾아올 새로운 날들에는 조금 더 걷고 관찰하며 살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문학책이 단순히 무용한 건 아니다. 현실을 살아가는 데 용기를 주는 진정한 실용서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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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올 해 마지막 주간북레터입니다. 내년에는 새로워진 모습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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