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은 삼일절로 시작한다. 삼일절을 앞두고 조선의 명문가이자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독립운동가 이석영 선생의 직계 후손을 순국 88년 만에 찾았다는 보도를 접하고 마음이 착잡했다. 종종 삼일절을 공휴일로만 여긴다. 하지만 윤암이나 덕수 같은 어린이들이 만세를 불렀고, 이석영 선생과 형제들이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할 일들이 쉬이 잊히는 세상이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일들을 기억하는 것, 그것이 역사다.
어린 만세꾼
정명섭 지음
사계절 2019
역사소설을 팩션이라고도 부른다.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진 가상의 역사 이야기임에도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허구인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흔적 없이 꿰매졌다는 뜻이다. 역사소설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는 정명섭 작가가 쓴 <어린 만세꾼>은 일종의 팩션이다. 몇 가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 동화 속에 녹아들어 있다. 우선 의열단의 심장인 밀양을 배경으로 한다. 또 의열단, 조선의용대의 영혼으로 불리는 독립운동가 윤세주가 등장한다. 마지막 사실은 정말 놀라운데, 밀양에서는 세 번의 만세 운동이 일어났고 이 중 두 번은 밀양 보통학생, 다시말해 초등학생과 졸업생이 주도했다. 3.14 만세 운동에는 160여 명의 보통학생이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거리로 나갔고, 4.2 만세 운동에는 60여 명의 재학생과 졸업생이 주축을 이뤘다. <어린 만세꾼>은 이런 역사적 사실과 허구가 만나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이야기의 전반부는 당시 보통학교에서 벌어진 일제의 폭압을 그린다. 조선인 여학생을 희롱하고 조선인을 비하하는 식민사관이 강요된다. 덕수와 윤암이와 민구와 용철이는 밀양에서 서점을 운영하던 윤세주를 만나 진실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나라 없는 설움을 연거푸 당한 아이들은 “나라는 우리 스스로 지키는 것이지 남이 지켜주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의 의미를 깨닫는다. 나아가 아이들은 윤세주가 이끄는 삼일 만세 운동을 돕고, 윤세주가 중국으로 망명할 수 있도록 또 다른 만세 운동에 나선다. 영화 <암살>이나 <밀정> 등과 함께 봐도 좋겠다.
이지수 지음
별숲 2021
1919년 삼일 만세 운동이 일어난 지 20여 년 후를 담아낸 역사 동화다. 1937년 일제가 벌인 중일전쟁(1937-1945) 무렵의 조선이 배경이다. 역사책을 읽다 보면 1930년대는 안타까운 시기다. 1919년, 목이 터져라 독립을 외쳤던 이들조차 이 무렵이면 일제에 투항한다. 조선이 영영 일본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할 것이라는 체념이 짙어졌던 시기다.
<위험한 행운의 편지>는 이런 분위기와 역사적 사실을 충실하게 재현해 역사 동화가 빠지기 쉬운 정형성이나 도식화된 캐릭터의 지루함을 가뿐하게 넘어선다. 주인공 영수는 보통학교 6학년인데 아버지가 목약(안약)을 만드는 회사에 다닌다. 이 목약을 신문에 광고하는데 모델은 당시 유명했던 무용가 최승희다. 이웃에 사는 옥희의 꿈은 안창남 같은 비행사가 되는 것이다. 이 무렵 자전거의 엄복동과 함께 “떴다 보아라 안창남의 비행기, 내려다 보아라 엄복동의 자전거”라는 노랫말이 유행할 정도였으니 옥희가 비행사를 꿈꾸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렇게 당대 풍경이 동화 속에 촘촘히 담겨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행운의 편지’다.
‘일곱 사람에게 보내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행운의 편지’는 1930년대 유행했고, 이 편지가 영수의 집에도 왔다. 영수는 ‘조선의 독립’이 소원이라는 문구를 적어 행운의 편지를 다시 보낸다. 이를 시작으로 일파만파로 소동이 벌어진다. 이 일을 겪고 영수는 독립 운동이 거창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보통학교를 졸업하면 일제가 세운 경기중학교로 진학하려던 마음을 접고 조선 사람이 세운 배재나 보성 중학으로 가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혹시 부모나 교사가 동화를 함께 읽는다면 군사 독재 시절의 학교 풍경이 어디서 기원하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