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의 독특한 이력을 알면 이 책의 매력은 더욱 강화된다. 한국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한 한병철 저자는 독일로 건너가 철학, 독일문학, 신학을 공부했다. 하이데거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스위스 바젤대학에서 데리다에 관한 논문으로 교수 자격을 취득했다. 현재 베를린 예술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독일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키는 책 20여 권을 출간했다. <권력이란 무엇인가>는 그의 첫 책이다. 한국어판 서문에는 권력을 탐구한 소회가 밝혀져 있다.
“한국인들에게 권력이 매우 부정적인 어감을 갖게 된 것은 한국의 특수한 역사 때문일 것이다. 폭력적인 식민 지배와 그 뒤를 이어 수십 년 동안 지속된 독재의 역사는 한국인들이 권력을 대하는 태도에 흔적을 남겼다. 그래서 권력은 억압이자 부자유로, 맞서 싸워야 할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권력의 시대로부터 급속하게 멀어지고 있다. 권력은 단 하나의 목소리에 절대적 타당성을 부여할 때 가장 빛난다. 그런데 우리 시대는 다수의 목소리들의 시대다”
<권력이란 무엇인가>에 인용된 학자들의 이름을 보자. 헤겔, 니체, 하이데거, 슈미트, 바타유, 푸코, 데리다, 루만, 하버마스, 아렌트.... 권력 이론에 대한 이들이 대거 등장하며 책은 촘촘한 지적 짜임을 보여준다. 권력의 부정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권력의 복합적 현상을 설명하는 데 의미를 두었다.
번역가의 말대로 ‘권력이 갖는 생산적인 차원, 무엇인가를 생성하고, 조직하고, 살아가게 하는 권력의 긍정적인 측면을 보여줌으로써 권력의 본모습에 더 가까이’ 접근했다.
가장 강력한 권력의 지표는 명료하다. 권력에 복종하는 사람이 스스로 권력자가 원하는 행동을 하려고 하고, 마치 권력자의 의지를 자신의 의지처럼 알아서 따르려고 하는 것이다. 권력과 복종하는 사람 사이의 어떤 매개가 그 권력에 맞서지 않고 스스로 힘으로 솟아나 작용하는 것이다.
<권력이란 무엇인가>에서 발견한 아름다운 대목은 “자유로운 권력”이 언급된 부분이다. “자유로운 권력이란 모순어법이 아니다. 그것은 타자가 자유로이 에고를 따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절대적인 권력을 얻으려는 자는 폭력이 아니라 타자의 자유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권력은 수하에 있는 사람들의 조언과 협조에 더 많이 의존한다.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실질적인 권력은 무엇을 명령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해주는 조언자에게 위임된다. 권력자가 갖는 다양한 의존성은 구조적인 권력 분산으로 이어진다.
밀도 높은 철학적인 책을 통해 권력에 대한 다양한 인식을 접하면서 권력이라는 말의 부정적인 그늘을 거두었다. 새로운 전환기에 권력의 다양한 면모를 이해할 책을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