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는 아주 오랫동안 약육강식의 논리에 충실했다. 남성과 여성, 어른과 아이, 국가와 국가 간 물리적 힘의 우위에 따라 권력을 독점했다. 군주제에서 공화제로 정치 체제가 변동했으나 여성과 청소년이 투표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영국과 미국에서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진 건 1918년과 1920년이다. 겨우 100여 년 전 일이다. 2011년 기준으로 이미 전 세계 232개국 중 215개국에서 만 18세 이상에 선거권을 부여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2019년 12월 27일 공직선거법이 개정되었다. 늦어도 한참 늦었으나 이제 드디어 청소년들도 대한민국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여전히 ‘표현, 결사, 집회’의 헌법적 권리는 제한받는다. 공직선거법 제60조 제1항 제2호는 ‘만 18세 미만의 미성년자는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기 때문이다. 학교가 정치판이 된다는 어른들의 염려는 타당할까. 이는 청소년을 시민으로 보지 않는 관점 때문이다. 청소년은 현존하는 시민이다. 청소년은 미래 사회의 주체일 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 사회에서 살아 숨 쉬는 시민이며 자신의 권리를 능동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주체다.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하며 민주시민으로 살아가야 할 청소년에게 정치 참여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민주주의는 수업 시간에 지식으로만 얻을 수 없다.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인권을 존중받고 학생 자치에 참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청소년은 미성숙한 존재, 보호가 필요한 대상이 아니라 ‘시민’이다. 이 책은 단순히 정치의 개념과 지식을 제공하는 대신 실제 생활에서 지켜야 하는 청소년의 권리와 의무를 설명한다. ‘인권교육센터’,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등 다양한 현장에서 청소년들과 만나는 활동가들이 공동으로 집필했기 때문에 이론이 아닌 실전에 초점을 맞춘다.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언어, 용의 복장에 대한 통제, 학생 자치 활동 등 생활 속에서 자신의 인권을 지키고 시민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우리 사회는 교육을 통해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시민을 양성한다. 거창한 목표와 추상적인 가치 대신 일상적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어른들의 고정 관념을 바꾸는 일도 중요하지만, 청소년이 스스로 주체적인 시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 지난 대통령 선거뿐만 아니라 다가올 지방 선거에서도 당당히 자신의 투표권을 행사할 ‘청소년-시민’들이 정치 참여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고민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