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이불을 참 좋아합니다. 몸에 칭칭 감고 애벌레가 되기도 하고, 망토처럼 둘러 슈퍼히어로가 되기도 하지요. 부드러운 촉감에 얼굴을 비비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아마 이불은 아이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림책에서도 담요와 이불은 단골손님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 토미도 담요를 무척 사랑합니다. 토미는 바람도, 어둠도, 고양이도 무서운 조금 예민한 아이예요. 상상력이 얼마나 풍부한지 어둠 속에서 거인이 나타날 것 같다는 생각에 잔뜩 겁을 먹기도 하지요. 그런 토미에게 담요는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방패입니다.
신기하게도 담요를 두르면 없던 용기가 생깁니다. 혼자서는 엄두도 못 냈던 운동장에도 나가 보고, 작은 모험도 시작하지요. 그러던 어느 날, 새를 잡으려는 고양이를 본 토미는 생각할 틈도 없이 숲속으로 달립니다. 친구를 구하려고 뛰고 또 뛰는 동안 담요의 실은 조금씩 풀리고, 어느새 토미는 담요 없이 홀로 서 있게 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순간 토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자유였습니다.
이 책에서 제가 가장 좋았던 점은 부모님의 모습입니다. 부모님은 "이제 담요 그만!" 하며 억지로 빼앗지 않습니다. 대신 아이가 스스로 세상으로 걸어 나갈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 줍니다. 생각해 보면 자유는 누군가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얻는 것이니까요.
요즘은 세상이 두려워 집 안에서만 지내는 은둔형 외톨이들이 사회적인 문제로 이야기되곤 합니다. 그들을 보며 이 책의 담요가 떠올랐습니다. 담요는 따뜻하고 안전합니다. 상처받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담요 안에서는 바람도 느낄 수 없고, 눈도 맞을 수 없으며, 새들의 노랫소리도 온전히 들을 수 없습니다. 토미는 담요를 잃은 것이 아니라, 세상을 얻었습니다. 눈송이가 얼굴에 닿는 감촉을 느끼고, 발밑에 쌓인 축축한 눈을 밟아 보고, 새들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살아 있다는 기쁨을 온몸으로 만납니다.
우리를 지켜주는 보호막은 분명 필요합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그 보호막을 스스로 벗어야만 비로소 세상이 보입니다. 아마 성장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요.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품은 채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 첫걸음을 응원해 주는 따뜻한 그림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