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사진첩은 늘 꽃밭이었다. 산책길이든 여행길이든 엄마는 꽃을 볼 때마다 아이처럼 눈을 빛내며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꽃이 뭐라고 저렇게 좋을까?’ 어린 나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그 옆으로 줄줄이 포즈를 취하는 어른들을 보며 세월이 가면 다 꽃을 좋아하나 보다 짐작했을 뿐이었다.
그 시절 나에게 꽃과 나무는 따분한 병풍 같았다. 여행 코스에 자연 명소가 있으면 한숨부터 나왔고, 경관을 본 어른들이 탄성을 질러도 나는 영 시큰둥했다. 등산을 가서는 어차피 내려올 산을 왜 올라가느냐고 툴툴, 평지인 숲에서는 벌레가 많다고 불평했다. 기껏 먼 곳에 가놓고, 한숨 잘 테니 다들 다녀오라고 내뺀 날도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건 자연보다 화려한 도심이었다. 말없이 서 있는 나무보다 시끌벅적한 친구들이 좋았고, 시들어버리는 꽃보다 꺼지지 않는 게임이 좋았다. 그마저도 입시가 임박했을 땐 사치로 느껴져 뛰어놀기보다는 책상 앞에 앉아야 했고, 짬이라도 나면 자야 했다. 학창 시절은 창밖을 볼 틈도 없이 점점 무채색으로 물들어 갔다. 시간은 계절이 아닌 시험을 주기로 흘러갔다.
요즘 친구들의 사정도 그때의 나와 다르지 않은지, 십 대 자녀 두 명을 키우고 있는 지인이 이렇게 말했다. “육아는 스마트폰과의 싸움이에요.”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 기기를 접한 아이들은 네모 속 세상에 빠져 산다고 했다. 친구들과의 소통, 놀이, 공부마저도 그 안에서 해결한다고. 네모난 공간에서, 네모난 책상에 앉아, 네모난 상자에 갇힌 모습을 상상하니 어쩐지 숨이 가빠졌다.
집에 돌아오는 길, 그날따라 날씨가 참 화창했는데 위를 올려다보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스마트폰을 좇는 사람들 뒤로 여름을 머금은 나무와 풀꽃이 조용히 소리쳤다. 나도 카메라를 들어 그 풍경을 담으려다 이내 손을 내렸다. 바깥은 온통 초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