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지하철을 탔다가 장애인 시위를 목격한 시민은 마음이 무겁다. 속상한 것은 제도 개선이 없어 몇 년째 반복되는 시위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장애인 이동권’을 위해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시위하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도 시민이다. 나와 다른 모습의 사람이든, 나와 비슷한 사람이든, 우리 사회 구성원이다. 접근 기회의 형평성이나 공정성의 문제로 장애인을 바라보게 되면, 장애는 의학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 문제라는 걸 깨닫게 된다.
지하철 시위는 잠정적으로 멈췄지만, 봄날 지하철의 풍경은 우리에게 삶의 문제를 환기했다. 우리는 오래 살수록 장애를 갖기 쉽다. 의료 기술의 도움을 받으며 인간 수명이 늘어날수록 자연스럽게 불편한 몸을 받아들이며 살아가야만 한다. 누구나 언제든지 장애를 가질 수 있다는 진실을 전제로 사회는 설계되어야 한다.
개인의 호의로 장애인을 돌보고 배려하는 차원을 넘어 제대로 된 사회 인프라가 구축될 때 인권에 대한 감각이 우리들에게도 유지된다.
세계적인 장애 운동가의 리더, 주디스 휴먼의 《나는, 휴먼》과 장애를 가진 반려견 이야기를 써 내려간 문소리 배우의 이야기 《세 발로 하는 산책》을 읽고 소중하게 남은 그 감상을 껴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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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휴먼
주디스 휴먼, 크리스틴 조이너 지음 사계절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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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크립 캠프>를 보았다. 미국 장애인들이 일정 기간 동안 캠프를 경험하는 시간을 기록한 영상이다. 캠프는 장애인을 위한 기획이었고, 참여한 비장애인 진행요원은 단순히 호의로 장애인을 돕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보수를 받으며 일했다. 캠프의 분위기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유로웠고, 장애인이 무언가를 부탁할 때도 떳떳하고 밝은 표정이었다. 이러한 구조의 사회라면 장애를 이유로 인권이 침해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 다큐 영상에서 주요한 문제를 제기하는 인물, 주디스 휴먼의 목소리를 듣고 그의 자서전 《나는, 휴먼》을 펼쳤다. 그는 다섯 살 때 장애를 이유로 학교 입학을 거부당했다. 아홉 살이 되어서야 학교 지하실 특수교육반에서 교육받았다. 대학생이 되었을 때 베트남전쟁에서 부상을 입고 돌아온 장애인들과 함께 반전 시위를 했다. 이후 교사가 되기 위해 뉴욕시 교육위원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교사 면허증을 취득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재활법 개정안 서명 거부에 항의하며 맨해튼 거리 시위를 주도했다. 재활법 504조 시행 규정에 서명하지 않는 보건교육복지부 장관에게 항의하기 위해 연방정부 건물을 24일간 점거한 끝에 서명을 끌어냈다. 클린턴과 오바마 행정부에서 일한 최초의 장애 권리 행정가가 되었다. 주디스 휴먼의 인생은 장애인이 어떻게 시민이 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역사다. 《나는, 휴먼》은 건조한 장애인 운동사가 아니다. 축복을 받고 태어난 한 인간이 소아마비로 휠체어를 타고 생활하면서 깨우친 인간의 저력과 인생의 아름다움에 대한 노래 같은 것이다. 장애를 원망한 적도 없고 타인을 비방한 적도 없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이웃과 함께 누리려 했고, 재능을 쉬지 않고 계발하며 사회에 기여하려고 했다. 그래서 편견과 싸웠고, 법률적으로 권리를 확보하려고 했다. 함께 잘 살기 위해서. 미국 정부에서 가장 직위가 높은 장애인으로 일하면서 그는 고백했다. “장애가 나를 더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고 성취하게, 그리고 여행하게 했다. 장애가 나를 싸우게 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달리 보게 하기 위해서. 우리의 잠재능력을 보게 하기 위해서.” 삶을 치열하게 살아낸 한 사람의 역사를 읽는다는 것은 하나의 큰 세계를 마주하는 것과 같다. 이 책은 우리 사회의 장애인 문제를 깊게 느끼도록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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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리 배우는 20년 전 영화 <오아시스>에서 장애인인 주인공을 연기했다. 데뷔작이었다. 이 영화로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신인배우상을 수상했다. 문소리 배우는 장애가 있는 반려견 ‘달마’의 삶을 그려낸 《세 발로 하는 산책》을 출간한 후 독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오아시스> 촬영 현장의 체험을 꺼냈다. 현장에서 종일 휠체어에 앉아 있어야 했다. 쉬는 시간에도 휠체어에서 살다시피했다. 그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바뀌었다고 한다. 낮은 눈높이에서 바라본 세상은 위압적이었다. 상점 간판들, 계단들, 사람들이 편리하게 사용하는 모든 시설이 달라 보였다. 휠체어를 탄 사람에게 간판은 어지러이 쏟아질 듯 보였다. 경사로가 없는 계단은 벽과 다름없었고 사람들과 대화는 쉽지 않았다. 상대방이 고개를 숙여주지 않으면 목소리가 잘 전달되지 않았으니까. 뒷목은 언제나 뻣뻣했다. 목을 젖히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었으니까.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의 고단함과 난해한 일상을 깨우친 날들이었다. 문소리 배우의 어린 딸은 물었다. 오징어 다리는 열 개, 문어는 여덟 개, 개미는 여섯 개, 개는 네 개, 사람은 두 개, 돈벌레는 서른 개라는데 왜 반려견 달마는 다리가 세 개냐고. 《세 발로 하는 산책》은 이 질문에서 시작한 책이다. 사고로 다리 하나를 잃었지만 달마의 산책은 달라지지 않았다. 비록 속도가 줄었지만 평화로운 시간을 만끽하는 모습에는 변함없었다. 하지만 낯선 사람들은 세 다리로 달리는 달마를 손가락질했다. 정상적인 모습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묘한 호기심이 장애를 결핍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반려견과 생활이 익숙하지 않아 좌충우돌하던 시기를 지나, 사고를 겪은 후 장애 반려견이 된 달마와 문소리 배우의 가족이 성장해가는 과정은 사랑 그 자체였다. “나이 많은 장애견을 묵묵히 보살피는 문소리 씨 가족과 노쇠와 장애를 받아들이는 달마의 의연함은 서로 닮아 있다. 그 담백함 속에 숨은 속 깊은 사랑은 느끼는 독자의 몫이다”. 임순례 영화감독은 추천사에서 사랑을 느껴보라고 권하고, 김태리 영화배우는 달마에게 고맙다고 인사한다. “그녀의 가족, 세상에 하나뿐인 달마를 만나 반가웠습니다. 깨달음이고 햇살이고 웃음이고 힘이었을 달마야 고마워”라고. 우리는 각자 세상에 하나뿐인 목숨이고 달마 역시 그렇다. 우리는 각각 달라도 그 너머의 사랑은 같다. 함께 숨 쉬고 함께 사랑하는 것, 우리가 원하는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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