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만난 날, 점심을 먹는데 한 친구가 내게 물었다. “네 거 맛은 어때?” 깊고 진한 풍미가 혀에서 휘몰아치는데, 입에서 나온 말은 ‘진짜 맛있어.’가 다였다. 싱싱한 재료와 요리사 선생님이 섭섭할 지경이었으나 딱히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맴도는 표현이라곤 ‘짱맛’, ‘핵맛’ 같은 속어뿐이었다.
잠시 후, 최근에 본 영화 얘기를 하다가 또 난관에 부딪혔다. “그 영화 어땠어?” 스토리도 연기도 흠잡을 데 없는 영화였는데, 이번에도 입에서 튀어나온 감상은 ‘겁나 재밌어.’였다. 무슨 내용이냐는 친구의 물음에 두서없이 줄거리를 설명했지만, 재밌다는 내 후기가 거짓말로 느껴질 만큼 형편없었다. 결국 영화 소개도 제대로 못 한 채 꼭 보라는 마른 당부만 하고 말았다.
그 후 집에 돌아가는 길. 한 무리의 학생들이 왁자지껄 소리치며 지나갔다. 순간, 대화 속에 난무하는 욕설이 내 귀를 탕탕 때렸다. 놀라서 뒤돌아보니 그 친구들의 얼굴이 다시 보였다. 문득 말은 거울이라는 생각이 스쳐 갔다. 그 거울에 비추면 내 마음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나고야 마는. 그간 내가 했던 말도 떠올랐다. 말 거울에 비친 나는 그들과 다를 바 없었다.
말에는 생각이 담겨 있고, 생각은 곧 ‘나’와 같다. 단정한 말을 쓰는 사람은 생각이 정돈된 사람, 존중하는 말을 쓰는 사람은 사려 깊은 사람, 다채로운 표현을 쓰는 사람은 삶이 깊은 사람. 반면, 거친 말을 뱉고, 한정된 표현만 쓰는 나는 마음의 폭이 좁은 사람이다. 말은 나를 닮아서, 내 모습을 따라 흘러간다.
내가 쓰는 말을 바르게 가꾸는 일은 곧 나를 가꾸는 일. 어여쁜 말을 골라 쓰고, 세상을 가득 담아내는 말 거울을 만드는 건 나를 사랑하고,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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