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기나긴 장마의 시작입니다. 자연환경은 인간의 감정과 생각에 깊은 영향을 줍니다. 집에서든 직장에서든 창밖에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상념에 잠기면 지나간 추억이 떠오릅니다. 과거는 현재를 만들고 내일을 향한 디딤돌이 되기도 하죠. 내가 살아오는 동안 만난 사람들을 떠올려 봅니다. 우리 삶은 우연과 필연이 교차하며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합니다. 그런데도 직접 경험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태어나 죽을 때까지 만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소설 속에는 수많은 인물이 독자들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제공합니다. 외모와 성격, 직업과 나이, 시대와 상황에 따라 구체적인 이미지를 그리며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소설 읽는 재미에 푹 빠지게 됩니다. 아득한 시대와 낯선 장소를 여행하며 쉽게 만날 수 없는 인물들의 심리와 행동을 관찰하는 일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커다란 즐거움입니다. 다음 두 권의 소설은 과거와 현재, 허구와 실재 사이를 오가는 간접 경험을 선물해 줍니다. 이렇게 흥미진진한 문학적 상상력이야말로 풍요로운 삶의 바탕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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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지음 |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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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커 상을 수상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이름을 알린 줄리언 반스의 장편이 6년 만에 출간되었습니다. 문장 형식의 소설 제목만으로도 사람들은 한참 생각에 잠깁니다. 인생에서 '우연'은 사람들의 준비와 노력을 허무하게 만들기도 하거든요. 계획한 대로만 살 수 없고, 생각한 대로 흘러가는 삶은 불가능합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 닐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번이나 이혼했고 자식이 셋이지만, 대학 시절 '문화와 문명'을 가르쳤던 엘리자베스 핀치, 일명 EF와의 우연한 만남은 삶의 가치와 의미를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닐은 졸업 후에도 EF와 일 년에 두세 번쯤 점심을 먹습니다. EF가 죽을 때까지 20년 동안 계속됐으니 특별한 시간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EF는 유산으로 닐에게 책과 기록을 남깁니다. 그 기록들 속에 서른한 살에 죽은 J(율리아누스 황제)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소설 속 또 하나의 이야기, 즉 액자식 구성으로 독자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킵니다.
아주 머나먼 시대의 이야기, 한 인간의 말과 행동으로 인류의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아마 평범한 인생을 사는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타인에 대한 사소한 오해로 깊은 상처를 받거나, 삶의 목적과 방향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아주 오랫동안 알고 지냈으나 EF가 떠난 뒤 닐의 시선으로 따라가는 그녀의 삶의 궤적은 독자에게 낯설게 느껴집니다. 우리는 가끔 어떤 사람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하면서 쉽게 추측하다 낭패를 경험하기도 하죠. 줄리언 반스는 과거의 역사와 개인의 인생도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 즉 관점의 차이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인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요.
긴박한 사건과 첨예한 갈등이 드러나는 소설은 아니지만, 천천히 읽다 보면 잔잔한 감동과 깊은 울림을 주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어차피 소설이 허구의 세계라면 그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만나는 건 가상의 인물이 아니라 오늘을 힘겹게 살아가는 바로 '나'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은 소설의 주인공도 현실의 독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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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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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사소하다'라고 말하는 일들은 사실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흔한 물건도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것들이 많습니다. 클레어 키건이 말하는 '사소한 것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 혹은 숭고한 대상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1980년대 아일랜드에서 벌어졌던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이 짧은 소설은 생각보다 깊고 단단한 내용입니다.
개인은 현실의 벽을 허물기 어렵고, 사회는 구성원 개개인에 의해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그 견고한 구조 안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진실을 외면하고 각자의 이익과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기도 합니다. 선과 악, 정의와 진실 앞에서 눈을 감기도 하죠. 이 소설의 주인공 빌 펄롱도 겨우 자리를 잡고 아내 아일린과 아이들을 돌보며 힘겹게 살아갑니다. 그러다 우연히 세라를 만나고 '뭣이 중헌디?'라는 본질적 질문 앞에서 고뇌합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산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요. 인간의 삶에서 지켜야 하는 소중한 가치는 무엇일까요.
작가는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조차 끝끝내 외면할 수 없는 진실, 그 너머의 빛이 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우연히 수녀원 창고에 갇힌 소녀를 알게 된 빌 펄롱의 선택은 개인의 삶은 물론 가족의 미래까지 송두리째 뒤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절대 사소하지 않습니다. 중편 소설 분량의 짧은 소설이지만 문장과 문장 사이는 길고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이 소설은 산다는 게 무엇인지,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질문으로 가득합니다.
문학이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끊임없는 고민이라면 줄리언 반스와 클레어 키건은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묵직한 화두를 던지고 있습니다. 삶의 목적과 가치, 방법과 태도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개인의 삶을 지배하며 그 결과를 전혀 다른 길로 인도합니다. 두 권의 소설을 읽는 동안 어디를 향해 살아가고 있는지,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한 번쯤 돌아보는 여유를 찾을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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