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피천득 선생의 수필 <오월>의 한 구절이다. 신록이 보드라운 오월에는 어린이날을 비롯해 여러 기념일이 있다. 올해는 방정환 선생이 제정한 어린이날이 백 주년을 맞는다. 가만 생각해보면 어린이는 약자 중에서도 가장 낮은 자리에 있다. 어린이를 그저 작은 어른 정도로 취급했던 시대에 ‘어린이는 어른보다 한 시대 더 새로운 사람’이라고 말한 방정환 선생은 참으로 앞선 사람이었다. 그로부터 백 년이 지났지만, 어린이를 부모의 소유물로 여기거나 혹은 외면하는 사례가 지금도 허다하다. 어린이 곁에 있는 어른이, 특히 부모와 교사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말할 나위도 없다. 어린이의 인생을 비출 특별한 선생의 이야기를 담은 두 권의 책을 소개한다. 어린이날은 물론이고 스승의 날을 맞아 읽어볼 만한 가슴 벅찬 동화다.
콩가면 선생님이 웃었다
윤여림 지음 천개의바람 2016
초동 초등학교 3학년 나반 김신형 선생과 반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연작 형식의 동화다. 2016년 출간된 후 어린이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후속권인 《콩가면 선생님이 또 웃었다?》(2017)이 나왔다. 2022년에는 김신형 선생의 어린 시절을 담은 《콩알 아이》까지 선보였다. 제목의 ‘콩가면’은 김신형 선생의 별명이다. 얼굴도 까맣고 머리도 짧아서 아이들이 그렇게 부른다.
콩가면 선생은 주인공인데 또 주인공이 아니다. 시작 부분을 제외하면 아이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질 뿐, 콩가면 선생은 없다시피 한다. 독자는 숙제하기 싫은 동구와 말썽을 일삼는 성인이와 헌 옷만 물려 입어 속상한 아린이와 손재주가 없어 주눅 든 진우를 차례대로 만날 수 있다. 신기한 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들 앞에 콩가면 선생이 살며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멋진 활약도 잔소리도 없이 꼭 필요할 때 나타나 아이들을 살짝 돕는다. 콩가면 선생을 만나면 어린이에게 꼭 필요한 어른이란 어떤 모습인지를 알게 된다. 콩가면 선생이 무뚝뚝하고 웃지도 않지만 아이들은 다 안다. 콩가면 선생이 어린이의 편이고 어린이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봐준다는 것까지 말이다. 어린이에게는 재미있는 동화, 어른에게는 콩가면 선생의 모습이 감동적인 작품이다.
빅스비 선생님의 마지막 날
존 D. 앤더슨 지음
미래인 2019
초등학교 6학년 남자아이 셋이 빅스비 선생을 만나러 가는 모험담을 그렸다. 담임 선생을 만나는 일이 뭐 그리 대단할까 싶다면 작품을 꼭 만나보길. 아이들의 좌충우돌에 웃다가 마지막에 펑펑 울게 되는 작품이다. 빅스비 선생은 학기를 겨우 4주 남기고 췌관선망종 진단을 받았다. 아이들과 파티를 하기로 했지만 그마저 취소하고 선생은 곧 큰 병원으로 옮길 예정이다. 병세가 심각하다. 토퍼, 스티브, 브랜드는 학교를 몰래 빠지고 선생을 만나러 간다. 아이들은 바로 병원으로 가지 않는다. 케이크를 사고, 헌책방에서 《호빗》을 챙기고, 와인까지 구입하느라 난리법석이다. 대체 왜 이런 게 필요할까. 끝까지 읽어야 이유를 알 수 있다.
드물지만 우리는 평생 잊지 못할 선생님을 만날 때가 있다. 어린이를 발견해주는 교사다. 혼자 무거운 삶의 짐과 맞서고 있는 브랜드를, 그림을 그리는 토퍼를, 스티브의 성적이 아니라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준 사람이 빅스비 선생이다. 살면서 우리가 오래도록 기억하는 교사는 빅스비 선생처럼 문득 돌아볼 수 있는 날을 만들어준 사람이다. 이런 순간이 있어야 어린이는 건강하게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