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세 아들과 4세 딸의 엄마이자 자상한 남자의 아내, 건축학을 전공한 그림 작가 올가는 연필 한 자루로 《전쟁일기》를 쓰고 그렸다. 직접 그린 그림에는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지하실의 생활을 견디기 위해, 그리고 전쟁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 알리기 위해서 기록한 것이다.
“전쟁 전 우리 삶은 작은 정원과 같았다. 그 정원에서 자라는 모든 꽃들은 각자의 자리가 있었고, 꽃 피우는 정확한 계절이 있었다.” 전쟁이 시작되자, 그 정원의 꽃들은 사라져버렸다. “전쟁에는 승리자가 없다. 오로지 피, 파산. 그리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마음속에 커다란 구멍만 남는다”고 올가는 말한다.
이 일기는 한국에서 먼저 출간되었다. 책에 나오는 문장은 모두 피를 찍어 쓴 것처럼 절절하고, 그럴듯하게 꾸민 말이 없다. 간명하다. 분노와 안타까움도 있지만 국적과 민족을 불문하고 도움을 준 사람에게 건네는 따스한 마음도 있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놀이를 멈추지 않고 생기 있게 매시간을 보내는 어린이들의 천진함도 있다. 먹을 것이 점점 떨어져 가고 간식도 최소한으로 주는 상황에서, 저자의 딸아이는 눈물겹도록 사랑스러운 말을 한다.
“엄마, 나는 초콜릿을 오래도록 아껴 먹을 수 있어. 볼 안쪽에 붙여두었어.” 이런 말을 듣는 엄마의 심정이 어떨지, 아이의 표정은 어떨지 떠올리면 가슴이 먹먹하다.
올가는 아이들을 위해 우크라이나를 탈출한다. 남편과 노모를 두고 홀로 아이들을 책임지며 안전한 곳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정확히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 채 피난 기차 안으로 뛰어들었다. 바르샤바를 거쳐 지금은 불가리아에 정착했다.
한 컷의 그림에 수많은 이야기가 담겼다. 짧은 문장에 깊은 감정이 실렸다. 탈출하는 올가의 고백은 《전쟁일기》가 아니고서는 읽을 수 없는 문장이다. “나는 폭탄으로부터 도망친다. 내 인생 35년을 모두 버리는 데 고작 10분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엄마를 집에 두고서, 내 아이들을 위해”.
신이시여. 이 가족을 돌보소서. 그리고 용기 내어 기록을 남긴 올가의 펜을 더 강하게 만드소서. 독자로서 신께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