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스물세 번째 책 편지를 보내드립니다! 💌

  🤔8·15처럼 각별한 기념일에 맞춰 어린이책을 고를 때면 선택지가 많아진다. 이 해방절을 통사로만 보는지, 우리 민족이 겪은 고통을 강조하며 저항 측면을 솔직하게 드러내는지, 개인의 지향을 분명히 표현하는 책인지 등을 살피게 된다. 지금 우리에게는 과연 어떤 해방이 필요한가 생각하며 이번 책들을 골랐다. 해방의 사전적 의미는 ‘구속이나 억압, 부담 따위에서 벗어나게 함’이다. 나로서는 생활과 직업에서 또는 나눔이나 봉사활동에서 갖는 강박이나 자기연민에서의 탈출이 우선 생각난다. 어린이들은 숙제나 시험이나 평가, 혹은 게임 등에서의 탈출과 해방을 생각할까 싶어 슬며시 재밌다.

  🙌이번 책들은 일제 강점에서의 민족 해방을 각각의 주제로 풀어낸다. 창경원 사자, 여성 독립운동가, 종이 짚신 신은 유학자가 바라고 갈망하는 해방을 그려낸 작품들이다. 역사책인가 동물책인가 궁금해하며 아래 첫 책을 펼쳤는데, 사자의 다음 회고 문장에 놀라 단숨에 읽었다. “저 흰 것들이 폭죽처럼 꽃망울 하얗게 터뜨릴 즘이면…새까맣고 둥근 머리통들이 와르르 몰려온다.” 나도 그 동근 하나의 머리통으로 사자를 구경하러 가던 어린 시절엔 그곳 동물들의 애환을 전혀 짐작 못 했다. 지금 어린이들에게 쉽지 않을 일제 통치와 만세운동, 8·15 광복을 사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탄식하며 읊조리는 책이다.

  ‘창경원’ 이름으로 동물이 궁궐 주인공이던 시절, 동물의 왕 사자와 나라 잃은 황제 순종을 나란히 놓고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일제는 1909년, 왕족의 궁궐 창경궁을 동물원으로 격하시키고 아프리카나 시베리아의 동물들을 모아놓고 학대 수준으로 전시하며 놀림감으로 삼았다. 매주 목요일엔 이 창경원 문이 닫힌 채 불쌍한 황제 순종만 관람 가능했다.

  이때 사자는 조선인 사육사와 굶어 죽는 코끼리를 동정하며 눈앞의 황제 순종에게 시 같은 혼잣말을 읊는다. “인간이란 존재가 그렇지. 뭐, 놀랍지도 않다. …사자는 배부르면 더 이상 사냥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이란 동물은 다르다. 인간은 배가 불러도 더 먹으려 든다. 그게 ‘탐’과 ‘욕’이다. …나와 같이 이 궁에 갇힌 황제로구나. 나처럼 네 삶도 구차스러운가?”

  일본에 항복한 순종 황제는 어머니 명성 황후가 지척에서 살해되고 담요에 말려 화장되는 동안 공포에 질려 떨었다고 한다. 1919년 겨울에는 아버지 고종 독살 후 3·1 만세운동이 벌어진다. 만세운동에 동참한 창경원의 조선인 사육사도 사망하고 일본인들은 그 사육사가 ‘김누리’라 이름 붙여준 사자와 모든 동물을 독살한다. 마찬가지로 종속된 신세였던 사자와 황제의 ‘구속과 억압, 부담’을 위로하며 명복을 빈다.

  여성 독립운동가들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태극기를 만드는 항일 학생 운동가로, 군인으로, 독립운동 자금 조달자로, 간호사와 의사로, 교육자로, 의열단원으로, 농촌계몽운동가로, 비행사로 일제 강점기에 투쟁한 선조 여성 열 분의 삶이 느껍다.

  그동안 대체로 가려졌던 여성 운동가 열 분의 삶과 활동이 뭉근하게 전해진다. 애정과 존경이 물씬한 글과 정겨운 그림에 담겨 8·15 바로 이 날짜에 출간되었다. 독립 국가 백성의 자주권이 강탈당한 상황에 저항하며 생애를 바쳐 활동한 이분들 덕에 우리 독립과 해방이 이루어진 것이리라. 어린이들에게도 이분들 이야기가 훈훈하게 전해지길 기대한다.

  한국의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심산 김창숙이 만들어 신었던 ‘종이 신발’ 이야기가 깊고 푸르른 그림들과 함께 펼쳐진다. 1919년 3월 1일, 선생은 「독립선언서」를 보다가 민족 대표 33인 중 유림 선비가 포함되지 않았음에 낯을 붉힌다. 하여 힘없는 나라들의 독립을 위해 열리는 파리 강화회의에 조선 선비 137명 이름으로 보낼 「유림단진정서」를 만든다. 우선 일본의 조선 침략 사실, 한민족의 주권 보유, 조선 황제와 황후를 암살한 일본 죄악, 우리 군대 강제 해산 후 한민족을 억압하는 일본 만행 들을 내용으로 넣었다.

  선생은 이 서류에 기름을 먹이고 꼬아 미투리 짚신을 만든다. 강 건널 때는 이 종이 짚신을 목에 걸고 검열 잦은 기차에서는 발에 신으며 님은 1919년 4월 상해에 도착한다. 이 짚신 서류는 다시 영어와 불어, 중국어로 번역되어 파리에 먼저 간 김규식 박사에게 우편으로 보내진다. 종이 짚신을 발에 꿰어 신은 채 장총 든 군인들의 검열을 견뎠을 선조의 마음을 짐작해 본다. 그리고 내가 지금 해결해야 할 ‘구속이나 억압, 부담’은 뭘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