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에서 이해인 수녀는 말한다. “언젠가는 분명 제가 글을 쓰고 싶어도 더 이상 쓸 수 없는 그런 날이 분명 오겠지요. 그러나 지금처럼 이렇게 머리글을 쓰면서 미지의 독자들을 미리 상상해 보는 일은 즐겁고 제가 아직도 지상에 살아 있는 존재임을 새롭게 각인시켜 줍니다.”
올해 77세, 첫 서원을 한 지 54주년, 이해인 수녀는 글을 통해 살아 있음을 새롭게 인식한다. 평화와 감사, 사랑의 글을 쓰는 동안 90년 된 수도 공동체, 가족, 친지, 독자를 떠올린다. 그리고 1950년 9월 납치당한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리며 평화의 기도를 올린다.
“이 둥근 세계에 / 평화를 주십사고 기도하지만 / 가시에 찔려 피나는 아픔은 / 날로 더해갑니다 / 평화로 가는 길은 / 왜 이리 먼가요 / 얼마나 더 어둡게 부서져야 / 한 줄기 빛을 볼 수 있는 건가요”
<평화로 가는 길은> 중에서
수녀원의 이해인 수녀 작업실 한 귀퉁이에는 40대 초반, 잘생긴 남자의 사진이 세워져 있다. 방문객들은 영화배우의 사진인가 궁금해하지만 아버지의 모습이다. 월북한 이래로 소식 하나 듣지 못해 그리움만 깊어갔다. 어머니, 오빠, 언니 수녀가 저세상으로 떠났고, 이해인 수녀는 그들이 그쪽에서라도 이산가족의 한을 풀 수 있기를 소망한다.
비극의 가족사지만 평화의 기도를 통해 일상을 살아갈 수 있다. 전쟁으로 우울한 유년기를 보낸 꼬마가 70대의 노수녀가 되었다. 선한 세계를 위한 기도 같은 시는 공감력을 지니며 넓게 퍼져나간다. 읽을수록 마음에 오래 남는다.
“꽃잎 한 장의 무게로 / 꽃잎 한 장의 기도로 / 나를 잠 못 들게 하는 / 사랑하는 사람들 / 오랫동안 알고 지내 /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 그들의 이름을 / 꽃잎으로 포개어 / 나는 들고 가리라 / 천국에까지”
<꽃잎 한 장처럼> 중에서
책 제목은 이 시에서 나왔다. 우리들의 소망은 이름이 되어 꽃잎처럼 포개어진다. 하루를 살더라도 평화롭게. 둥근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선한 마음에 기대어 인생은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