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시스 베이컨은 “태어난 순간 죽음은 시작된다.”라는 말로 우리 삶에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를 상기시켰다. 모든 인간이 언젠가 죽는다는 명쾌한 진리 앞에 서면 우리는 조금 경건해진다. 산다는 건 어떻게 죽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는 건 자기 앞에 놓인 삶을 성찰이며 미래를 위한 준비다.
🤔이제 막 세상살이를 시작한 청소년들에게 죽음은 너무 먼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할머니, 할아버지, 부모나 친구의 죽음을 일찍 경험할 수도 있다. 질병, 사고, 전쟁, 학살, 대형 참사 등 인류는 수많은 이유로 매일 ‘죽음’을 목격한다. 그리고 우리도 언젠가 생을 마감하는 순간을 맞는다. 계획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으니 가장 시급한 고민의 앞자리에 ‘죽음’을 배치해야 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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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남은 시간 죽음의 디데이
이혜린 지음 | 박시현 그림 | 풀빛 | 2024
어느 나라에서든 ‘생일’은 축복과 기념의 대상이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은 누구에게나 기쁨과 환희를 안겨주기 때문이다. 태어난 순서대로 나이를 먹으며 세상을 살아가지만 언제 죽음을 맞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소설의 주인공 담이는 부모님의 죽음 이후, 타인들의 죽음까지 남은 날짜를 볼 수 있는 ‘죽음의 디데이’ 능력을 갖게 된다. 머리 위에 초록색 링이 떠오른 여자 친구 소미소를 바라보며 담이는 어떤 느낌일까.
가족, 친구, 연인의 죽음을 경험한 사람은 그 고통을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자기가 죽는다는 공포보다 더 깊은 슬픔에 빠지기 때문이다. 주인공 담이는 타인의 죽음을 바라보는 패배감과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자발적 ‘아싸’를 선택한다. 그러다가 소미소를 만나 마음이 차츰 마음이 열리지만, 어느 날 머리 위에 초록색 링을 보고 만다. 이 소설은 환상적 리얼리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현실적 요소를 반영했으나 지극히 현실적이고 직관적이다. 고등학생 주인공 담이가 겪는 죽음과 사소한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지극히 현실적이다.
인간은 역설적으로 실패를 통해 도전과 성공의 의미를 깨닫고, 타인의 죽음을 통해 자기 삶을 성찰한다. 작가가 이제 막 인생을 시작하는 청소년들에게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는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누구나, 언젠가 죽는다는 명백한 진실 앞에서 우리는 겸손해진다. 삶이 유한하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에게 남은 시간, 죽음의 디데이를 알고 있다면 살아있는 모든 순간을 소중하게 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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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장례식에 어서 오세요
보선 지음 | 돌베개 | 2024
사람마다 사는 이유와 방법이 다르다. 그것은 자기 삶의 목적과 가치관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저마다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인생을 살아가지만 결국 모든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자명한 진실 앞에서 사람들은 조금 더 겸손해진다.
작가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안한다. 살아있는 동안 장례식을 하는 건 어떠냐고. 실제로 작가는 2021년 4월 12일 ‘장례식’을 올렸다. 초대받은 ‘하객’들은 기꺼이 보선의 유튜브 라이브 장례식에 참석해 ‘축하의 말’을 전했다. 이 경험이 바탕이 된 이야기는 ‘죽음’이 아니라 ‘삶’을 고민하게 한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그림과 진솔한 글이 어우러져 독자가 자기 삶을 성찰하도록 유도한다.
사람들은 대개 타인의 행복과 불행, 삶과 죽음을 통해 결국 자신의 인생을 고민하는 게 아닐까. 작가 보선의 이야기는 사적인 장례식에 해당하지만, 누구보다도 소중한 각자의 인생을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정답이 없는 질문이지만 이런 고민을 하지 않으면 방향을 잃고 헤매거나 중심을 잡지 못할 때가 많다.
막연한 위로와 격려보다 ‘죽음’이라는 구체적 사실이 우리에게 더 많은 말을 건넨다. 사는 동안 만난 사람들을 초대해서 장례식을 치르며 잘 살았다는 박수를 받고 싶었다는 작가의 소박함이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눈물과 슬픔으로 가득한 이별이 아니라 남은 생을 위한 힘찬 발걸음이라면 작가의 아이디어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어쨌든 오늘이 남은 인생의 첫날이라면 장례식이 오히려 기쁜 날이 될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