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전업 작가인 나에게 들어오는 일의 대부분은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에세이 쓰기 수업 및 글쓰기에 대한 강연이다. 많은 사람이 글을 쓰고 싶어 하고, 글 쓰는 법에 대해 배우고 싶어 하기에 각종 단체와 지자체에서도 적극적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유치한다. 맨 처음 수업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잠깐의 유행일 거라 여겼던 글쓰기 열풍은 해를 거듭할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반면, 독서 인구는 날이 갈수록 줄고 있다. 이제껏 나의 주 수입원은 책을 팔아서 발생하는 인세였지만 언제인가부터 책만 써서는 생활할 수 없게 되었다. 어느새 부수입이었던 강의료가 주 수입 자리를 차지한 지 오래다. 주위를 둘러봐도 책을 읽는 사람이 얼마 없다. 지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대화 주제는 재테크, 부동산, 그리고 유튜브.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마다 승객들이 뭘 보고 있는지 살펴보면 다들 스마트폰으로 영상물을 볼 뿐, 책을 읽는 사람은 없다.
바로 이 점이 아이러니다. 읽는 사람은 줄어드는데 쓰는 사람은 왜 늘어날까. 과거에 비해 독립출판 등 자가 출판이 쉬워졌기 때문일 것이고, SNS의 발달로 개인의 이야기를 써서 게재하는 일로 독자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일 거다. 하지만 이것 말고도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아 요 몇 달 진지하게 생각해 봤다.
먼저 ‘나’에 집중하는 추세 때문은 아닐까. 세상과 개인은 상호적인 관계여서, 세상이 개인에게 관심을 보일 때, 개인 역시 세상에 관심을 가진다. 그런데 요즘 사회가 과연 개인에게 관심이 있는가. 그 결과 개인은 점점 더 ‘나’에게 집중하게 된다. 모두가 자신만을 생각하는 각박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내가 나를 챙겨야 한다는 믿음은 점점 강해진다. 몇 년 전부터 출판계를 뜨겁게 달군 에세이 열풍, 특히 나답게 살기를 주장하는 책들의 유행이 이 흐름을 반영하는 것은 아닐지. 세상이 내 편이 아님을 실감할수록 사람들은 세상과 밖, 또는 타인의 이야기를 듣기보다 나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한다.
두 번째 이유는, 쓰는 일은 읽는 일보다 자극적이기 때문이다. ‘흥분하게 만드는 무언가’를 일컫는 ‘도파민’은 요즘 시대에 더없이 매력적인 가치(!)가 되었다. 오감을 자극하는 영상물, 짧지만 강렬한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자극을 접할수록 더 큰 자극을 추구하며 시쳇말로 ‘도파민 중독’이 되어간다. 반면에 읽는 일은 느리다. 읽는 행위를 통해 자극을 얻기까지는 긴 에너지와 노력, 시간이 든다. 그에 비해 쓰는 일은 창작의 재미와 성취감을 즉각적으로 선사한다. 듣기보다 말하기를 즐기고, 보는 것보다 참여하는 것이 더 재미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쓰기’는 ‘읽기’보다 더 큰 ‘도파민’을 안겨준다. 이러한 이유로 읽기보다 쓰기가 관심받는 시대가 온 게 아닐까.
하지만 나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세상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잘 들어야 잘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모든 쓰기에 앞서 필요한 것은 읽기다. 읽을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꾸준히 쓸 수 있다. 비록 시간이 걸리고 결과가 눈에 바로 보이지 않더라도 살면서 읽고 들어온 이야기들은 새로운 이야기를 창작하는 힘이 된다. 요즘 “저는 평소 책을 잘 읽지 않아요. 그냥 책을 쓰죠”라고 말하는 작가들을 종종 본다. 하지만 그의 ‘쓰기’가 언젠가 벽에 부딪힐 때 도움이 돼 줄 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남의 책 혹은 누군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일 것이다.
글을 쓰는 게 직업인 나조차 요새는 각종 미디어 콘텐츠를 섭렵하느라 예전만큼 책을 읽지 못한다. 그 결과 글을 예전만큼 쓰지 못한다. 그래서 요즘은 뒤늦게 반성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책을 읽고 있다. 몇 장을 넘기다가도 금세 스마트폰의 유혹에 넘어가지만 그래도 꾸준히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쓰고 싶은 이야기를 발견하게 될 거라 믿는다.
요즘 나의 가장 큰 화두인 ‘읽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이 많은 시대’에 울림을 준 책 두 권을 소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