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늦은 여름휴가를 가졌다. 2년 만의 여름휴가이자 팬데믹 이후 첫 외국 여행, 십여 년 만에 처음으로 혼자 떠난 여행이었다. 쉬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일이 곧 수입이 되는 프리랜서로서, 들어오는 일을 포기하고 휴가 날짜를 잡기가 쉽지 않았다. 일을 거절하면 다시는 일이 들어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일하는 대신 놀러 가는 게 가당키나 하나’라는 자책, 빠듯한 살림살이에 여행 경비를 따로 마련해야 한다는 버거움이 늘 따라다녔다. 하지만 어떻게든 살 궁리를 하는 게 사람이라고, 2주 치 일을 한꺼번에 해치우고 각종 일정을 테트리스 맞추듯 조율하면서 꾸역꾸역 3박 4일을 마련했다. 몇 년 만에 얻은 혼자만의 시간이었지만 거창한 계획은 없었다.
1) 되도록 말을 하고 싶지 않다. 2) 계획 따윈 세우고 싶지 않다. 3) 그저 많이 웃고 싶다.
이 세 가지만 가슴에 품고 휴가길에 올랐다.
언제부터였을까. 여행에는 동행이 필요하다고 믿기 시작한 것은. 2~30대 때는 대부분 혼자 여행했으면서도, 시간이 지날수록 감상을 나눌 존재가 없다는 게 아쉬웠다. 맛있는 걸 먹으면서도 혼자 속으로 ‘맛있네….’해야 하고, 멋진 경치를 봐도 마음속으로 ‘멋지구먼….’하는 데 질려버렸다. 여행을 둘러싼 모든 절차와 길 찾기, 질문과 답변을 혼자 소화해내기도 버거웠다. 그래서 자연스레 동행을 만들어 서로 의지하면서 돌아다니다 보니 ‘과연 내가 혼자 여행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몇 년 만에 혼자 여행하고 싶어졌다. 아니, 더 정확히는 혼자가 되고 싶었다. 수많은 업무 연락과 전화, 메일, 카카오톡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이렇게 행동하면 상대방이 불편하겠지?’ 따위 고민할 필요 없이 며칠만 자연인인 채로 보내고 싶었다. 오랜만의 여행인 만큼 나만 생각하고 싶었다. 내 멋대로 돌아다니며 하고 싶은 것만 하는 여행. 먹기 싫으면 안 먹고, 자기 싫으면 안 자고, 끌리는 것에만 시선을 두며 보내는 시간. 그러기에는 고작 나흘이었지만, 지금의 내가 마련할 수 있는 최선의 일정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3박 4일 동안 지나치게 무리했다. 가고 싶은 데가 없는 줄 알았건만 하루 2만 5천 보씩 걸어 다니며 두 다리를 혹사했다. 보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많아 잠잘 시간조차 부족했다. 매일 아침 퉁퉁 부은 눈을 억지로 뜨면서 생각했다. 이게 휴가가 맞는가. 우리나라에 있을 때보다 더 과로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지만 이미 불붙은 욕망을 막을 자는 없었다. 혼자만의 여행의 특권이자 맹점이랄까.
그러는 동안 나를 더 잘 알게 되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게 필요하고 또 필요 없는 사람인지. 실수에는 어떻게 대처하고, 어떨 때 긴장하는지. 어떨 때 행복을 느끼고 마음을 놓는지. 또 무엇을 자주 생각하는지. 그동안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사느라 몰랐던 진짜 나를 만날 수 있었다. 그 시간 동안 느꼈다. 나는 아주 오랜만에 여행다운 여행을 하고 있구나. 최대한 말을 적게 하는, 계획 따윈 세우지 않는, 그저 많은 웃은 여행을 하는 데 성공했구나.
짧은 여행에서 돌아오니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체력을 과신한 나에 대한 징벌도 남아 며칠을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멋진 여행을 하고 난 후가 그렇듯, 내 안에는 새로운 에너지가 쌓였다. 그 힘으로 남은 계절을 어떻게든 버텨낼 것이다.
오랜만에 누린 혼자만의 시간이 벌써 그리워진다. 아무래도 다음번 여행 역시 혼자 떠나게 될 것 같다. 이번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준 책들이 있다. 그중 두 권을 소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