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을 맞아 줄줄이 이어지는 행사와 만남이 마무리되면 나도 모르게 깊은 숨을 내쉬게 된다. 반가움과 감사함을 동시에 챙겨야 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은 즐거우면서도 부담이 된다. 어른스러움과 의무를 내려놓고, 자연인인 나로 돌아가고 싶을 때면 생각 나는 얼굴들이 있다.
뜬금없는 이야기를 나눠도 좋고, 침묵으로 있어도 좋은 사이. 이유 없이 깔깔거려도, 갑자기 흥분하며 떠들어대도 괜찮은 친구들 얼굴이다. 세월에도 지지 않고 모자란 내 곁에서 비슷하게 모자란 모습을 나눌 수 있는 사이란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문득 생각난 친구에게 연락하니 얼마 전 시작한 연애로 골머리를 썩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온다. 그 친구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기에 친구의 고충과 함께 상대의 고충도 짐작이 간다. 자칭 ‘친구의 전문가’로서 멋진 척 위로를 건네고, 시답지 않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대화를 마무리한다. 조만간 같이 맛있는 거나 먹자는 말과 함께.
또 다른 친구는 결혼 생활의 어려움을 털어놓는다. 혼자 사는 내가 그 심정을 백 퍼센트 이해하기란 어렵지만, 남의 결혼 생활에 감 놔라 배추 놔라 하는 것은 현명한 행동이 아니라는 것쯤은 안다. 그저 ‘어떡하냐? 힘들겠네’를 중얼거리다 조만간 같이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가자는 말로 통화를 마친다.
또 다른 친구는 맘 같지 않은 회사생활에 대해 분노하며 백만 번째의 ‘사표 쓰고 싶다’는 말을 꺼내놓는다. 그 마음을 또 백 퍼센트 헤아릴 수 없는 나는야 프리랜서. 조만간 같이 맛있는 거나 먹자는 말로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끝맺는다. 예로부터 ‘맛있는 것’이란 그 어떤 대화에도 활용이 가능한 마법의 한 마디다.
이제껏 친구들과 나눠온 우정을 되돌아보면, 그들은 나의 또 다른 가족 같다. 자주 연락은 못 해도 생사 확인만큼은 꼬박꼬박 해야 하는 존재들, 가정의 달에 가족들과 함께 챙겨야 할 소중한 사람들이다. 친구들이 없었어도 내 인생은 굴러갔겠지만, 썩 재미없게 굴러갔을 것이다. ‘꾸역꾸역’, ‘덜컹덜컹’이 대표 단어인 내 삶을 유연하게 앞으로 가게 하는 것은 우정이라는 윤활유다.
그런 의미에서 남은 5월은 우정의 달로 보내야겠다. 한동안 못 만났던 친구들과 함께 맛있는 걸 먹으러 가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