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조금 다른 결로 ‘꿈’을 이야기하면서 담담하고도 진한 감동을 전한다. 한 어린이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이야기지만, 결코 어둡거나 무겁지 않다. 마음 따뜻하게 주위를 보듬던 친구가 교통사고를 당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각기 다른 성격의 벗들을 이해하며 품고 이어 주던 친구의 갑작스러운 부재를 겪어야 한다. 그 빈 자리를 매일 보고 느끼면서 남은 벗들의 혼돈은 깊다. 친구의 부재는 뜬금없이 꾸게 되는 꿈 같다. 누군가와 영영 헤어지는 좋은 방법이라는 게 정말 있겠는가.
슬픔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이별을 잘 받아들이는 법 배우기는 너무 어렵다. 왜 친구 장례식에 못 가나, 책상 위 국화꽃은 언제까지 두는가, 교실 안 친구의 흔적이 왜 이렇게 빨리 사라지나, 왜 아무도 친구를 말하지 않나, 이해 못 하겠다. 이제 벗들은 차차 달라진다. 조금씩 말을 멈추고는 서로 연결하려 애쓴다. 어찌 보면 친구가 남긴 선물인가, 친구의 떠남을 실감할 즈음 고백하게 된다. “네가 엮어 준 우리 사이가 이제 조금씩 보이는 거 같아.”
열세 살 친구의 삶은 은은하고 따뜻한 봄볕 같아 모르는 사이에 모두를 감싸 안았다. 이 마음 따뜻한 친구의 부재를 여러 방식으로 느끼며 남은 벗들은 조금씩 자기 울타리를 넓힌다. 힘들지만, 떠난 친구를 중심에 두고 함께할 뭔가를 찾는다. 친구가 떠난 49일에는 함께 미사를 드려 보지만 마음은 여전히 서걱거린다. 친구를 추억하며 웃고 싶고, 친구와 보낸 빛나는 순간들을 즐거움으로 남기고 싶어 골몰한다. 그러다 마침내 친구의 육체가 현재 존재하는 납골당을 함께 찾아 서로를 위로하고 인사도 전한다. “천국은 네가 가서 더 살기 좋은 곳이 되었겠지. 거긴 네가 없어도 좋은 곳이었을 텐데.”
친구는 이제 벗들 꿈에 나타난다. 환한 얼굴로 숨바꼭질을 하고는 “난 이제 갈게, 잘 있어 얘들아,” 손 흔들며 떠난다. 친구와 제대로 된 인사를 나눈 벗들은 이제 울지 않게 되었다. 한바탕 울고 났으니 서로 손 잡고 그다음으로 나아간다. 화자에겐 이제 현실의 꿈도 생겼다. 친구의 강아지를 이어받아 잘 키울 자격을 갖춰야 한다는 꿈. 어린이들 스스로 찾아가는 애도와 연대의 과정이 무척 정성스럽다. 그 과정에서 우리 아이들은 여러 뼘 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