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을 자주 내다본다. 나무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름철 초록은 멀리 떠나고 싶은 마음을 부추기면서도 선뜻 떠날 수 없는 마음을 다독여주기도 한다. 휴가철에는 무엇보다 자연의 속삭임을 듣는 것이 좋다. 바빠서 눈길을 자주 주지 못했던 식물들, 움직이는 모든 생명체를 느끼는 것은 내가 일하고 살아가고 사랑하는 이유를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식물 이름을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란, 좋은 사람을 사귈 때처럼 이야기로 이어진다. 화분의 식물들은 자연의 선물이긴 하지만 어쩐지 짠할 때가 있다. 사람의 필요에 의해 삶 속으로 끌려들어온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 상태 그대로의 나무들, 삶을 돌아보기에 최적인 여름 휴가철. 시인이 쓴 《나무와 돌과 어떤 것》과 소설가가 쓴 《나무가 있던 하늘》을 읽으며 자연과 조화롭게 인간이 행복해지는 법을 되새겨본다. 소유하지 않아도 존재 자체로 풍요로운 나무와 그 나무가 춤추던 하늘, 작은 꽃들의 움직임을 시인과 소설가는 어떻게 기록했는가. 그리고 각종 상업 건물의 편리함에 길들여진 우리 삶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물으며 창밖 나무를 또 쳐다본다.
나무와 돌과 어떤 것
이갑수 지음
열화당 2022
“나무의 잎자루는 왜 이렇게 가느다랗고 잘록할까. 나무는 공들여 완성한, 제 몸의 일부인 잎을 왜 이리도 불안한 상태로 놓이게 한 것일까. 식물학자에 따르면 그것은 잎이 바람에 잘 흔들리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잎이 광합성을 하면서 내뱉는 산소가 멀리 잘 퍼지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능선에서 길게 불어오는 거친 바람을 어르고 달래어 순한 바람으로 만들어 세상으로 내려보내는 잎들의 능력. 그뿐만이 아니다. 잎사귀가 잘 흔들리는 것은 결국엔 언젠가 나무에게서 잘 떨어지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나무와 돌과 어떤 것》에서 이 대목을 발견하고 무릎을 쳤다. 잎사귀가 잎자루에서 불안하게 매달려 있던 이유를 알게 되어서다. 그리고 시인이 쓴 문장이 좋아서 중얼거리며 자꾸 따라 읽었다.
바람에 잘 흔들리며 멀리 산소를 퍼뜨리는 나뭇잎의 구조. 우리는 호흡하며 무엇을 더 멀리 퍼뜨려야 할까. 우리는 몸체보다 더 가느다란 발목을 움직이며 세상을 다닌다. 흔들리는 나뭇잎 같은 비슷한 구조다. 우리가 퍼뜨려야 할 것은 무엇일까.
식물학을 전공했으나 식물에 대해 잘 모르고, 나무와 꽃을 좋아해 자주 기웃거렸지만 뒤늦게 조금 알게 되었을 뿐 오랫동안 무심했다고 고백하는 저자.
나무와 꽃의 이름을 알아가며, 돌을 어루만지며 시인이 타인과 더불어 사는 삶을 돌아본다. 나무와 대화하는, 심지어 돌과도 조응하는 성숙한 사람의 태도를 읽는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자유롭게 풀어지면서 즐거움도 한껏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세계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간 것 같다.
나무가 있던 하늘
최성각 지음
오월의봄 2022
‘나무가 있던 하늘’의 제목은 소로의 글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소나무가 차지하고 있던 하늘은 앞으로 200년간 빈다. 소나무는 이제 재목이 되었다. 소나무를 쓰러뜨린 사람은 하늘을 파괴했다. (...) 강둑을 다시 찾아온 물수리는 앉아서 쉴 익숙한 나뭇가지를 지켜줄 만큼 우뚝 솟았던 소나무들의 죽음을 슬퍼할 것이다.”라는 소로의 문장에서. 우리는 자연의 일부이기에 소나무를 잃은 것은 곧 우리의 손실이라는 애도의 표현이었다.
‘풀꽃세상을위한모임’이라는 환경 단체를 만들어서 새나 돌멩이, 조개, 지렁이 등 비인간에게 참회와 감사의 ‘풀꽃상’을 주는 방식의 환경 운동을 꾸준히 해왔던 소설가 최성각의 신간 《나무가 있던 하늘》에는 빈 하늘보다 나무가 춤추며 그 공백을 메우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말한다.
《나무가 있던 하늘》에는 칼 폴라니, 헨리 데이비드 소로,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등 인류의 미래를 고민했던 실천가들의 이야기들은 물론 이름 없이 환경과 이웃을 위해 사는 사람들도 나온다. 저자가 책상머리에서만 쓴 글이 아니라 시골 깊숙한 곳에서 온몸으로 겪으며 정리한 삶의 이야기라서 어느 한 문장 귀하지 않은 게 없다.
헬레나의 이야기는 그대로 가슴에 박힌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선 가족, 친지, 이웃과의 좋은 관계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자연과의 친밀한 접촉에서만 가능하다.” 어려운 말이 아니다. 우리의 관계는 사람뿐만 아니라 식물, 작은 생명체와 교감으로 이루어진다. 이 관계가 좋으면 인생도 좋다. 단순한 진리다. 우리 곁에는 나무와 꽃과 생명체가 있다. 그걸 잊으면 안 된다는 듯이 여름의 나무는 무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