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편혜영은 『저녁의 구애』(2011, 문학과지성사)에서 “물건을 보면서 노동의 경로를 생각하는 버릇은 오래되었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아침에 눈을 뜨면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한순간도 어떤 물건을 사용하지 않는 시간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생존을 위해 돌칼을 사용하던 호모사피엔스가 휴머노이드 로봇을 일상적으로 활용하는 단계까지 문명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놀랍고 기막힌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 가능한 시대를 맞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많은 도구와 물건들이 모두 필요한 것인지,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건 아닌지, 그것이 인류의 미래를 스스로 어둡게 하는지 살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생기는 법입니다. 유토피아를 꿈꾸는 막연한 낙관론이 디스토피아를 경고하는 비관론보다 더 위험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오늘을 성찰하고 미래를 준비하지 않으면 생각보다 심각하고 치명적인 상황을 맞을 수 있습니다.
“인류 역사를 만든 것은 유전자가 아니라 물건이었다.”라는 저자의 관점이 신선합니다. 인류의 진화는 생물학적 유전자가 아니라 도구의 발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그만큼 우리는 수많은 도구를 활용하며 생활합니다. 최첨단 장비부터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주방 도구까지 매일매일 새롭고 신기한 물건이 쏟아집니다. 그런데 이런 발명 혹은 발전은 그만큼 커다란 후유증을 남깁니다. 이 책의 원제는 《So Much Stuff》입니다. ‘너무 많은 물건’이 반드시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약속하지 않는다는 분석입니다.
인류는 생존을 위해 ‘도구’를 만들었으나 어느 순간 ‘의미’를 담기 시작했고 이제는 ‘더 많이’ 만드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게 아니냐고 반문하는 저자의 이야기에 주변을 돌아보게 됩니다. 한때 ‘미니멀리즘’과 ‘심플 라이프’가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오늘날 지구인 1인당 1톤 넘게 돌아가는 분량이며, 에펠탑 80만 개 이상의 무게에 해당”하는 플라스틱 제품과 함께 살아가며 “이 플라스틱 중 지금도 사용되고 있는 것은 3분의 1 정도에 불과”합니다. 더 놀라운 건 재활용된 것은 약 6%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미래, 아니 지구의 내일은 정말 괜찮을까요?
일상생활을 위한 생필품, 편리와 안전을 위한 발명품, 예쁘고 의미 있는 굿즈 등 자본주의 시스템과 소비 욕망이 결합한 ‘물건’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생산됩니다. 저자는 환경 운동가가 아니지만, 과연 지구에 대한 매너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독자들에게 묻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