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이었다. 극장을 벗어나면 으레 “어땠어?”라고 운을 떼고, 서로 감상을 나누는 게 우리의 관례였다. 영화가 마음에 쏙 들었던 나는 어떤 점이 좋았고, 왜 재밌었는지 구구절절 설명했다. 내 얘기를 잠잠히 들은 친구는 나와 다른 의견을 말했다. 어떤 점이 아쉽고, 왜 그랬는지, 특히 내가 감동한 장면을 지적하길래 나는 못 참고 말을 끊었다. 우리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굳어진 친구의 얼굴을 보니 불현듯 대학생 시절, 아르바이트할 때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내가 일했던 곳은 지방 도시에 있는 작은 사무소로, 여섯 명 남짓의 근무자가 있었다. 나를 제외한 구성원의 나이는 사십 대부터 육십 대에 이르렀다. 말하자면 내 입장에서는 까마득한 어른이자 인생 선배들이었다. 당시 나는 학교도 졸업 전인 사회 초년생이었고, 또 맡은 바 임무도 사무보조여서 상사들을 졸졸 쫓아다니며 일을 배웠다. 그렇게 사무소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길 한 달째, 나는 한 분의 독특한 대화 패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제 방문한 OO 씨가 의뢰한 내용…” “아, 뭔지 알아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OO 사업소에서 보낸 서류…” “그거 빠진 게 많던데요?”
😮…이 많은 그분의 대화에는 상대방이 말을 끝맺는 경우가 드물었다. 물론 업무가 바쁘다거나, 익숙한 내용이거나 기타 여러 사정이 있을 수 있지만, 어떻게 포장해도 나는 그 모습이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다. 일하는 내내 뚝, 뚝, 잘려 나간 말을 애도하며 나는 ‘내가 어른이 되면, 다른 건 몰라도 꼭 잘 듣는 사람이 돼야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보다 조금 어른이 된 지금, 나는 다짐이 무색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내가 되고 싶은 어른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나는 열린 마음으로 상대방에게 귀 기울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떠들기보다는 듣고, 내세우기보다는 겸손한 어른이길 바랐다. 하지만 말랑말랑했던 내 마음은 어느새 딱딱해지고, 선입견이 벽을 쌓아 귀를 가로막았다. 더 근본적으로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살면서 내가 만난 어른 중에는 분명 내가 되고 싶은 어른이 있었다. 나는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을 품었음에도 보드라운 마음을 가진 어른. 지금도 늦지 않았다면 다시 ‘내가 어른이 되면-’ 하고 꿈꾸고 싶다. 그리고 그런 어른과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다. 이번에는 말랑말랑한 마음을 가지고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