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소도시나 섬에서 초등학교 앞을 지날 때면 늘 마음이 들뜨고 설렌다. 학교 건물 모양새도 대도시보다 더 알록달록 예쁘고 아담하다. 저 사랑스러운 건물 안 어린이들은 어떤 모습일까, 어떤 성격일까. 대도시 어린이들보다 얼마나 더 곱고 단아할까, 눈빛은 얼마나 더 반짝일까. 이런 상상으로 마음이 풍선처럼 부푼다.
대도시에서 줄곧 살아온 자로서 갖는 문화적 환상이나 착각일까. 지방 도시들의 현직 교사인 제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어느 지역 어린이들이든 자기 계발 노력과 원만한 교우 관계가 중요한 일인 듯은 했다. 지금 만나는 이 봄에 어린이들이 더 행복할 방법은 무엇일까?
‘자유롭고 마음이 풍요로운 어린이들’이라는 소망을 현실에서 그려 보여주는 책을 만났다. 강원도 속초시 청호동 아바이 마을의 길러지지 않는 어린이들 이야기다. 생기발랄함을 품고 생명과 환경 존중, 교사와 부모에 대한 사랑과 존중을 듬뿍 전하는 어린이들이 씩씩하게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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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러지지 않는다
탁동철 지음 | 김종숙 그림 | 낮은산 | 2023
고향과 형제를 잃은 이들이 모여 사는 강원도 마을 어린이들 이야기다. 어른들은 설움 가득할지언정 어린이들은 생기로 충만한 이 작품을 읽으며 즐겁고 행복했다. 우리나라의 희망이 개성공단이라고 믿는 어린이들이다. 비가 오면 손잡고 같이 쫄딱 젖도록 맞으며 술래잡기하고, 버려진 새끼고양이를 발견하면 주워 와 학교 안 어디선가 함께 돌보는 아이들이다.
“여기 남은 우리는 길러지지 않고 사는 야생 인간”이라고 어린이들 스스로 밝힌다. 어린이들이 자기네 힘으로 논을 만들겠다고 결정하고 실행하는 한편, 선생님은 투덜거린다. 현실에서 정말 그러하기는 어떻게 하면 가능했을까! “선생님이 투덜거렸다. 힘들다 지쳤다 귀찮다 후회스럽다, 너희 논이니까 너희가 다 알아서 해라, 구시렁구시렁. 선생님 혼자 팔짱 끼고 서서 빈둥거리는 동안 우리끼리 땅을 팠다. 지고 이고 들고 줄줄이 마을 길을 걸었다.”
이 초등학교에 찾아가서 실습이나 실험, 자원봉사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다음 책을 골랐다. 길러지지 않는 야생 어린이들이 실제 손잡고 나무와 꽃을 탐험하러 떠난 듯한 모습이 책에 들었다. “출발! 초대받은 식물 찾아 한 바퀴”라는 관제가 붙은 어린이 식물도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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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나무·꽃 탐험대
손연주, 박민지, 안현지 지음 | 손연주 그림 | 주니어RHK | 2023
책 표지를 열면 나오는 앞날개 면의 지은이 소개 글부터 압권이다. 읽는 이 시선을 사로잡으며 결국은 깔깔 웃게 만든다. “용감하지만 맹꽁하고 상상하면서 세심하고도 따뜻한” 필진이란다. 오랫동안 수백 권 책을 만들며 나는 어찌 이런 생각을 못 했는지 참말 아쉽다.
도시 길거리에서 쉬이 만나면서도 이름조차 잘 몰랐던 ‘길가 가로수와 화단의 화려한 꽃’들을 탐험한다. 과연 이 나무와 꽃은 어디에서 왔을까, 언제 어이하여 초대받았고 지금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이름은 무엇이고 왜 그런 이름으로 불리는가? 세심하고 따뜻한 식물학자들이 과학, 역사, 지리, 문학, 환경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상세히 설명한다.
섬세하게 그려 낸 50종의 세밀화,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의 조합도 뛰어나다. 재미있고, 쉽고, 끝까지 읽기 좋은 어린이용 식물도감을 만나 즐겁다. 도시 식물을 뿌듯하게 탐험한 야생 어린이들이여, 이제 너그러운 의사 선생님의 그림책 박물관에서 좀 쉬어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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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의사 선생님
소중애 지음 | 단비어린이 | 2023
다정한 그림책이다. ‘바람이 길을 내고 달리는 바람길 도시’에서 산부인과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 선생님 이야기다. 이 세상 아기들뿐 아니라 공부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 어려움을 만난 이들을 도우며 아끼고 사랑함에 열심인 어른이시다. 주변 많은 이들에게 따뜻함을 베풀던 의사 선생님은 할아버지가 되어 병원 운영이 어려워지자 특별한 용기를 내신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향한 풋풋한 그리움을 담아 병원을 고쳐 이 세상에 하나뿐인 멋진 어린이 문학관을 만드신다. 병실이던 공간마다 동화책과 그림책들이 전시된다. 이 어린이 문학관은 바람길 마을 모두에게 열린다. 텅 비었던 병실에는 다시 웃음소리가 가득 차고 의사 선생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어난다. “문학관이 들랑달랑 새로운 바람길”을 만든다.
의사직과 의사 집단을 둘러싼 여러 어려움이 중구난방 터져 나오는 이 시절 우리 사회를 보며 안타깝다가 이 그림책을 대하자 마음이 훈훈해진다. 아픈 사람 치료하기를 본인의 천직으로 생각하는 사명감 넘치는 의사 선생님들을 주변에서 많이 대한다. 이들의 사랑과 봉사 정신과 역사가 혹시라도 졸속 사회제도와 정치 욕구로 인해 훼손되지 않기를 희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