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지인들을 만날 때마다 여름휴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휴가 계획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의 얼굴은 직장 이야기를 할 때랑은 사뭇 다르다. ‘남들 다 가는 휴가지 뭐’, ‘어쩌다 보니 그렇게 정해졌어’ 하다가도 일순 빛나는 눈빛, 저절로 올라가는 입꼬리. 그 표정에서 모두가 이 계절을 얼마나 기다려왔는지가 느껴진다.
프리랜서인 나에게는 딱히 여름휴가가 없다. 프리랜서니까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것 아닌가 싶지만 언제든 떠났다가 결국 일이 나를 떠나는 결과를 여러 번 맞이하곤 했다. 휴가를 가려면 일을 쉬어야 하고, 만에 하나 가더라도 내 돈 내고 가야 하고, 여행 왔는데 갑자기 급한 일이 들어오거나, 다 마치고 돌아왔는데도 일이 전혀 없는 상황이 이어지다 보니 ‘여름휴가? 굳이 없어도 되고’ 하게 된다.
그렇다고 여름휴가를 즐기는 사람들을 시샘하는 속 좁은 성격은 아니다. 소셜미디어에 올라오는 사람들의 여행 사진을 볼 때면 내 자식도 아닌데 엄마 미소를 짓게 된다. 여행은 좋은 것. 설레는 것. 꼭 내 것이 아니라 해도 가슴이 뻥 뚫리는 것이다.
여행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을 때, 여행지에 대한 책을 읽는다. 그것도 조금 축축하고 진지한 글을 찾아 읽는다. 여행지의 이면에 대해 말하는 책. 기껏 멀리 떠났는데도 자기 마음 하나 어쩔 줄 몰라 허둥대는 사람의 이야기. 그런 책을 읽다 보면 여행은 장소가 아닌 사람이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딱 우리만큼 여행한다. 나라는 사람은 낯선 곳에 가서도 크게 변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 허무함이 여행을 계속하게 만드는 것 아닐까. 유한한 시간, 유한한 경험, 그리고 나라는 유한한 존재. 일상에서는 자꾸 까먹는 사실을 보다 또렷하게 실감하기 위해 우리는 일부러 짐을 싸서 먼 길을 떠난다.
다정한 구원
임경선 지음 | M창비(미디어창비)| 2019
삼 남매 중 막내였던 아이 ‘경선’은 아버지의 파견 근무로 포르투갈에서 일 년을 살게 된다. 그것도 온 가족이 함께가 아니라 아빠, 엄마 그리고 아이 이렇게 세 식구만. 아이는 그동안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기간 한정 외동딸’이 되어 사랑을 듬뿍 받으며 지내고, 부모님 역시 어쩐지 홀가분한 모습으로 그들의 젊은 시절을 즐긴다.
남다른 추억이 어린 그곳을 아이는 엄마가 되어 딸과 함께 다시 방문한다. 소중한 추억을 안겨준 부모님은 이제 세상에 없다. 엄마가 된 ‘경선’은 추억의 장소를 딸과 함께 거닐며 그때와는 다른 모습으로 웃고 운다. 이른바 딸과 함께하는 애도 여행이다.
임경선 작가의 리스본 여행기인 이 책은 많은 것이 남다르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살던 곳을 부모가 되어 딸과 함께 방문한다는 배경 자체도 놀랍지만. 그 특별한 이야기를 한없이 들뜨거나 울컥하게 다루지 않고 그저 담담하게 펼쳐 보인다. 그럼에도 독자로 하여금 불쑥 눈물이 솟구치게 만드는 건 임경선 작가의 특별한 감성과 필력이 아닐지. 이 책을 만나고 나는 여행 에세이는 이 책 한 권만 추천한다.
우리는 귤멍멍이 유기견 아이돌
구낙현, 김윤영 지음 | 동그람이 | 2023
제주에 갈 때마다 폐 속으로 맑은 공기가 절로 들어오는 것 같아 마음이 상쾌해지다가 이내 한없이 무거워진다. 개들에게 천국 같은 이 땅은 개들에게 지옥이기도 하므로.
사람들은 기껏 제주까지 여행 와서 개를 버리고 간다. 그리고 제주의 꽤 많은 개들은 태어나자마자 유기되고 들판을 떠돌다 몇 년을 살지 못하고 죽는다. 기껏 생명을 부지한 개들이라도 2미터가 채 되지 않는 목줄에 묶여 개집 주변만 서성이다 생을 마감한다. 엄마 아빠가 있어도 얼굴을 모르는 개들. 보호자가 있어도 제대로 사랑받지 못하는 생명들.
그들에게 가족을 찾아주기 위해 두 사람이 뭉쳤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어떻게 하면 개들에게 좋은 가족을 만나게 해줄 수 있을지만 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유기견 연예 기획사. 케이팝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유기견을 아이돌 연습생으로 변신시켜 우주 대스타도 만들어버린 것이다. 아이돌 데뷔에 성공한 개들에게는 평생 가는 특전이 주어진다. 바로 평생 가족과의 만남!
개들을 위해 뭘 이렇게까지 하나 싶은 두 사람을 보면, 이 땅이 마냥 지옥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두 사람을 통해 벌써 열 마리 넘는 개가 가족을 만났다. 그리고 여전히 평생 가족을 기다리는 개도 있다. 눈물 콧물 웃음 나는 유기견 프로젝트를 읽고 나면 여행지 제주가, 제주의 개가 이전과는 다르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