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하고 훈훈한 나눔이 펼쳐지는 시절이다. 특히 어린이들에게는 해넘이에 따라 학년이 올라가고 반 친구들과 선생님까지, 학교와 사회 환경이 모두 바뀌는 시점이다. 매듭을 하나 지으면서 새 시작을 맞는 이때 어린 조카들과 시내 나들이를 가졌다. 외국에서 나고 자라 아직 우리 말과 글이 서툰 조카들의 한 해 학교생활은 어땠는지 궁금했다. 6학년 남자아이에게는 친구들 및 선생님과 관계 맺기가 중요한 듯했다. 1학년 꼬마 아가씨에게는 즐거운 놀이와 맛난 음식이 중요했단다.
새것을 기다리고 바라며 만들어갈 이 시절에 어린 님들은 어떤 책을 고르는지 보고 싶어 함께 너른 서점으로 향했다. 큰아이는 교실에서 연극 만드는 책을 골라왔다. 꼬마 아가씨는 토종 씨앗 찾는 이야기책과 어린 고양이들이 출현하는 포근한 의자 그림책을 골랐다. 그 가운데 첫 책인 아래 작품은 주인공 연우 가족의 연말 송년회 모습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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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 합격 연극반
임지형 지음, 지우 그림 | 마주별| 2023
주인공 이름은 ‘조연’우다. 학기 초, 공부를 매우 강조하는 엄마 친구가 가까이 이사 오고 엄친아 ‘주연’우가 같은 반이 되어 조금은 불편한 일들을 만난다. 담임 선생님이 제안하신 연극 〈빛나는 선거〉에 지원한 두 연우 등은 전원 합격, 협력하며 연극을 만들어간다. 이 책은 기본 줄거리 안에 선거 주제 연극이 포함되는 액자 구조를 갖는다. 연극도 학교생활도 혼자서는 이뤄내지 못한다. 나와 너를 존중하고 협동하며 호흡을 맞추는 연극 속에서 연우와 친구들은 한 뼘 더 성장한다. 주연은 조연들 덕에 빛난다는 사실, 주연이든 조연이든 각자 삶에서 가장 빛나는 존재임을 이해하고 인정한다.
이 어린 친구들이 다음으론 아래 SF 작품을 연극으로 올린다고 상상해본다. 지구의 이상 기후 상황을 배경 삼아 서사를 다양하게 풀어나가는 작품이다. 작가는 세계 토종 씨앗의 75%가 멸종되었고 우리나라 토종 씨앗도 97%가량이 사라졌다고 이야기한다. 돈이 되는 작물들만 심은 탓에 재배 곡물은 획일화했고 기후 위기로 인한 심각한 식량 기근까지 닥친다. 이 상황에 몇몇 어린이가 토종 씨앗 저장소를 찾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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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 찾는 아이
문상온 지음, 박현주 그림 | 썬더버드| 2023
오래전 조상들은 토종 씨앗 저장고를 설치해 두었으나 유전자 변형 씨앗이 개발된 후 그 저장고는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미래의 우리 사회는 기후 변화로 공장의 단일화 곡물이 모두 말라 죽고 심각한 식량 부족 사태를 맞는다. 사라진 토종 씨앗을 찾아 인류를 구하라고 유언을 남기신 식물 연구원 아빠의 뜻에 따라 열두 살 소년 정국이는 씨앗을 찾아 나선다. 인공 지능 로봇 비비와 함께 고생 끝에 도착한 씨앗 저장소는 이미 도둑맞아 텅 빈 폐허였다. 탐험 과정에서 여러 위험을 만나면서도 생명 존중과 사랑 나눔을 실천한다. 적은 식료품이나마 거리 굶주린 아이들과 나누는 정국, 보육원 동생을 위해 차를 훔쳤던 친구와의 이해와 교감, 스스로 진화하여 더 발전하는 반려 로봇 등이 정겹다.
이들은 드디어 푸르른 언덕에 올라 자연과 생명과 씨앗 그리고 공존을 깨달으며 인류 구원의 희망을 찾는다. 서사가 꽤 짜임새를 갖췄고 억지스럽지 않은 좋은 작품이다. 『전원 합격 연극반』에서 가족 송년회를 치르고 연극 작품도 끝냈으며 『씨앗 찾는 아이』에서는 지구 인류를 존속시킬 토종 씨앗도 찾아냈으니 이젠 좀 쉴까. 저기 구멍가게 앞에 놓인 따뜻하고 푸근한 의자에서 휴식하며 새로운 해님을 맞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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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에게
김유 지음, 오승민 그림 | 모든요일그림책| 2023
그림이 아주 아주 따뜻하다. 한 해의 끝을 바라보며 낡지만 푸근한 의자에 파묻혀 따뜻한 그림들을 펼치며 행복하자. 도시 변두리에서 홀로 구멍가게를 하며 살아가는 한 할머니가 낡은 의자에게 본인 이야기를 담담히 들려주신다. 할머니는 딸이 오랫동안 쓰던 소파 의자를 힘들게 가져와 살뜰히 애용하신다. 어느 날 밤 누군가 의자를 헤집고 스펀지를 훔쳐 가는 사건이 발생한다. 대체 누구란 말이냐, 모진 마음을 품고서 저녁에 범인 고양이 뒤를 쫓아간 할머니는 의자 스펀지들 아래서 놀라 우는 새끼 고양이들을 마주한다.
먹먹한 감동과 짙은 여운이 남는다. 낡은 의자, 변두리 구멍가게, 볼품없는 빈집, 독거노인, 떠돌이 고양이 등 세상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존재들이 절묘하게 엮였다. 노련한 글 그림 작가들은 이 작고 여린 존재들을 무대 위 주인공으로 올려놓는다. 낡음의 가치, 내 곁 소중한 대상을 향한 애틋한 마음과 고마움, 함께하는 삶 등을 글과 그림으로 이야기한다. 환상적인 그림과 글로 완성된 『의자에게』를 대하며 나는 그리운 엄마 품을 떠올린다. 아마 새해도 또 괜찮겠지.